부스스한 머리에 면도를 하지 않아 까칠해진 얼굴은 며칠 사이의 마음고생을 말해 주는 듯했다. 평소 ‘산소 같은 남자’로 불리던 산뜻한 이미지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프로농구 최고 인기스타 이상민(35).
3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자택에서 만난 그는 “지난 2, 3일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아마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이상민은 28일 밤 KCC 정몽익 구단주를 비롯한 프런트 고위층에게서 삼성 서장훈을 영입한 데 따른 보호선수에서 자신이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는 큰 충격에 빠졌다. KCC 구단 측이 마련한 위로 술자리에 참석했다 만취해 다음 날 오전 3시에 귀가한 그는 연방 구토를 하면서도 영문을 묻는 부인 이정은 씨에게 “아무 일도 아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다음 날 거리를 배회하며 외부와 접촉을 끊은 이상민은 30일 삼성이 자신을 보상선수로 영입했다는 소식을 부인을 통해 들었다. “KCC에서 보호선수에서 제외됐을 때 이미 떠날 운명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집사람이 많이 울었고,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에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1995년 연세대 졸업 후 현대(현 KCC)에 입단한 이상민은 줄곧 한팀에서 뛰다 은퇴하고 싶다는 희망을 여러 차례 밝혔다. 허재 강동희 같은 국내 농구의 한 획을 그은 선배들이 말년에 이런저런 사연으로 팀을 옮기는 모습이 서글프게 보였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몇 해 전 정상에 올랐을 때 그만뒀을 텐데….”
이상민은 서장훈 영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지난 시즌보다 1억2000만 원이나 삭감된 연봉 2억 원의 재계약서에 기꺼이 사인했다.
“장훈이 건에 대해선 KCC가 특히 내게 미안해해야 할 부분이다. 희생하고 크게 봐 달라는 요청에 선뜻 응했는데….”
이상민은 연세대 2년 후배로 절친한 사이인 서장훈이 KCC로 이적하는 데 상당 부분 공헌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헛수고한 꼴이 된 데 따른 허탈함도 컸다.
자신의 거취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가 거친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상민은 “마음을 잡지 못해 다 버리고 잠시 해외여행을 떠날까, 더 비참해지기 전에 은퇴해 버릴까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최근 6년 연속 올스타전 인기투표 1위에 오른 만큼 열성적인 팬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는 듯했다.
“삼성은 설명이 필요 없는 명문 구단이다. 나이 먹고 옮기게 돼 뭘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부담도 크다. 새로운 기회라 여기고 팀을 위해 뭔가 힘이 돼 보겠다.”
성남=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