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초여름 더위에 몸이 무겁다. 시원하고 쫄깃한 메밀국수가 절로 생각난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송옥’(02-752-3297)은 여름이면 한번쯤 찾게 되는 곳이다. 아래 위층으로 탁자 4∼5개씩 놓인 넓지 않은 식당. 그래도 40년 이상 메밀을 고집해 온 그 맛을 못 잊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주인장(김복임 씨·68)의 말
광화문에서 오미(五味)라는 이름으로 10년쯤 장사를 하다 건물이 헐리는 바람에 1970년대 중반 지금 장소로 옮겼어요.
메밀국수는 우선 메밀과 밀가루의 비율이 중요하죠. 메밀 70%에 밀가루를 30% 섞습니다. 메밀이 좋다고 너무 많이 넣으면 찰기가 없어서 면이 ‘또각또각’ 끊어져요. 반대로 메밀을 적게 넣으면 특유의 향과 맛이 사라집니다. 이걸 빼면 다른 첨가물은 일절 들어가지 않아요. 반죽할 때 쓰는 뜨거운 물이 전부죠.
메밀은 신선함이 생명이기 때문에 첫 반죽에서 숙성을 거쳐 손님상에 낼 때까지 길어야 반나절입니다.
다음은 장국인데 우리 집은 멸치 맛이죠. 대략 9∼10월 사이에 잡히는 여수산 멸치를 씁니다. 이 시기에 잡히는 것을 오사리 멸치라고 부르는데 그냥 먹어도 짜지 않고 구수한 맛이 납니다. 1년간 쓸 것을 사들여 냉동 보관한 뒤 사용합니다. 끓는 물에 오사리 멸치를 듬뿍 넣어 국물을 낸 뒤 다시 가쓰오부시, 자연산 다시마, 설탕, 간장, 생강을 넣고 끓입니다.
○ 주인장과 식객의 대화
∇식객=바로 옆 건물에 같은 이름의 약국이 있네요.
∇주인장=소나무 송(松), 구슬 옥(玉). 식당 이름이 특이하죠? 70년대 작명가로 유명한 김봉수 씨에게서 받은 이름입니다. 소나무처럼 사계절 푸르고 옥처럼 변함없으라고. 그런데 이곳으로 오니 바로 옆에 송옥약국이 있더군요. 약사 선생님 이름을 땄다는데 참 공교롭죠. 이름 덕분인지 장사하면서 크게 고생한 적도 없습니다.
∇식=메밀을 먹기 전에 장국을 두 그릇이나 비웠네요. 달착지근하면서 짜지 않고 시원합니다.
∇주=장국으로 속을 달래는 분도 많습니다. 장국 맛이 달라지면 손님들이 발길을 돌려요.
∇식=메밀국수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습니까.
∇주=그거야 사람마다 다르죠. 하지만 장국에 국수를 오래 담그는 것보다는 살짝 담갔다 빼서 먹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메밀의 탄력과 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요.
∇식=정말 이름 덕분에 고생이 없으셨어요?
∇주=말이 그렇죠(웃음). 고향이 전남 나주인데 남편과 빈손으로 서울에 올라와 멸치 장사도 하고 메밀 뽑는 기술도 배우면서 고생했습니다. 당시 메밀 한 그릇에 15∼20원 했어요. 정말 옛날 얘기죠.
∇식=빈 자리가 없네요.
∇주=이제 먹고 살 만한데 몇 년 전 ‘영감’이 세상을 훌쩍 뜬 게 너무 안타까워요. 둘째가 송옥이라는 이름을 지켜 줬으면 합니다.
1인분 5000원.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