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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joy]거침없는 헛발질… 족구공화국은 즐겁다

입력 | 2007-06-01 03:01:00

족구는 한국에서 태어난 ‘민족 구기’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한민족의 스포츠답게 선수들도 즐겁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도 신나고 흥겹다. 대한민국 족구 1인자 김종일 씨가 강력한 넘어차기 기술로 강스파이크를 하고 있다. 마루에 오른손 짚는 것을 제외하곤 태권도 앞돌려차기와 흡사하다. 이천=석동률 기자

족구는 이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레포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박지성이 활약하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훈련 프로그램의 하나다. 훈련 중 족구로 몸을 풀고 있는 한국국가대표팀 선수들. 동아일보 자료사진


족구는 흥겹다. 장기판이 벌어진 사랑방처럼 왁자지껄하다. 하는 사람도 즐겁고, 보는 사람도 배꼽을 잡는다.

괴발개발 헛발질. 똥 볼, 홈런 볼에 피그르∼ 아리랑 볼. 어느 팀이나 새는 곳은 있다. 발 따로 마음 따로, 흐느적거리는 ‘몸치’가 있다. 그는 온갖 기기묘묘한 퍼포먼스로 족구마당을 들었다 놓았다, 웃겼다 울렸다, 흥을 돋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웨인 루니나 라이언 긱스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도 족구를 즐긴다. 훈련을 하다가 지루하거나 가볍게 몸을 풀 땐 어김없이 족구판을 벌이며 웃고 떠든다. 박지성은 ‘족구 지존’이다. 이미 2006 독일 월드컵 때 전 세계에 그 실력을 보여 줬다.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넣은 골이 바로 그렇다. 그 골은 족구에서 네트를 넘어가기 직전 공을 살짝 건드려 넘기는 ‘토스 슛’이다.

○ 1966년 공군 조종사들이 처음 시작

대한민국은 족구 탄생국가이다. 1966년 공군 조종사들이 배구장에서 네트를 땅에 내려놓고 발로 시작한 게 처음이다. 1968년 국방부가 앞장서서 육군과 해군에도 널리 퍼뜨렸고 1974년에는 아예 규칙까지 만들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족구 최강국이다. 전국족구연합회에 등록된 팀만 2000여 개. 추산되는 동호인은 약 55만 명이나 된다. 등록하지 않은 사람까지 합하면 수백만 명에 이른다.

한국 족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처럼 오래 전부터 승강제를 실시하고 있다. 1부 리그는 32개 팀. 해마다 2부 리그에서 올라오는 팀만큼 2부 리그로 떨어진다. 지난해는 3개 팀이 2부 리그로 내려갔다. 2부 리그 팀은 전국족구연합회가 주관하는 20여 개 대회에서 일정한 점수 이상을 따내면 1부 리그로 올라갈 수 있다. 1, 2개 대회에서 우승하더라도 누적 점수가 적으면 자격미달이다. 어느 해엔 오직 1개 팀만이 1부 리그에 오른 적도 있다.

○ 7m 40cm 떨어진 이쑤시개 맞히는 기술

김종일(33·이천 아스텍) 씨는 족구 달인이다. 한국에서 족구깨나 하는 사람들은 서슴없이 그를 첫째 아니면 둘째 손가락 안에 꼽는다. 키 173cm에 몸무게 65kg. 왼발잡이이지만 오른발도 잘 쓴다. 그는 배구로 말하면 강 스파이커다. 발 스윙에 힘이 철철 넘친다. 그가 한번 공을 때리면 마룻바닥이 떵떵 울린다. 그만큼 공이 멀리 날아가거나(20여 m) 체육관 천장까지 튀어 오른다. 상대팀 수비수들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다.

김 씨는 태권도 선수(4단) 출신. 그의 족구 스파이크(넘어 차기) 스타일도 태권도의 앞 돌려차기와 흡사하다. 그는 축구에도 빼어나다. 회사 대표로 전국직장인축구대회에 나가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포지션은 왼쪽 미드필더. 100m를 11초대에 달리는 스피드로 상대 진영을 휘저었다.

김 씨는 자나 깨나 족구 생각뿐이다. 모든 것을 발로 한다. 양말을 벗어서 세탁기에 집어넣는 것도, 걸레질도…. 심지어 농구도 3점 라인 밖에서 족구공을 발로 차 넣는 식으로 한다. 그는 지난달 22일 KBS TV ‘무한지대 큐’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네트에서 7m 40cm 거리에 있는 이쑤시개를 ‘넘어 차기 기술’로 맞히는 묘기를 선보였다. 7m 떨어진 곳에 깡통 5개를 나란히 세워 놓고 넘어 차기로 쓰러뜨리기도 했다. 그는 혼자서 2부 리그 선수 3명과 가진 경기에서도 이겼을 정도다.

족구는 배구 세터의 역할을 하는 띄움수와 넘어 차기를 하는 공격수의 궁합이 절대적이다. 하이닉스 반도체 자회사인 아스텍의 주장이자 띄움수인 최병식(42) 씨는 “김 씨는 발의 스윙 스피드가 빠르고 발목꺾기가 360도 자유자재라 상대 수비수들이 막기에 애를 먹는다. 네트에서 공 하나 정도 높이만 되면 벼락같이 대각선으로 때릴 수 있는 유일한 선수다”라고 말한다.

1부 리그 32개 팀 중 강팀은 이천 아스텍, 현대 파워텍, 평택마루, LG디오스 등 4, 5개 팀. 이들의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날 선수들 컨디션에 따라 승부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배구와 마찬가지로 서브가 강한 팀이 유리하다. 족구 서브는 누구나 넣을 수 있다. 한 사람이 계속 넣을 수도 있다. 강 서브는 수비수들이 받아낸다 하더라도 볼이 불완전하다. 띄움수가 공격수에게 볼을 알맞게 띄워 주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서브 득점은 2점이다. 거꾸로 밋밋한 서브를 넣다가 단번에 공격을 당해 먹어도 2점 실점.

1부 리그 팀 선수들은 낮엔 회사 일을 하고 밤에 주로 연습한다. 아스텍 같은 경우 일주일에 2, 3회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훈련을 하고 주말엔 주로 다른 팀과 경기를 갖는다. 각종 대회 우승 상금은 팀 운영비로 쓴다.

족구는 고교 팀이 7, 8개이고 대학 팀은 5개가 있다. 대학 최강인 한세대 팀은 1부 리그 최강 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 여자 동호인 팀은 전국에 10개 안팎으로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다.

3바운드 3터치가 기본… 네트에 몸 닿으면 무조건 반칙

족구는 상대 진영에서 넘어온 공을 단번에 공격해 성공하면 2점을 얻는다.

족구공은 330∼360g으로 축구공보다 작고 배구공보다 약간 크다. 족구화는 바닥이 평평하고 쿠션이 없어야 한다.

족구는 ‘3바운드 3터치’(공이 3번 바닥에 튀고, 3번 몸에 닿는 것)가 기본. 하지만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일부 방송에선 ‘2바운드 3터치’를 적용하기도 한다.

네트 높이나 코트 길이도 마찬가지. 어린이나 여성들은 네트 높이가 90cm이지만 남자 성인들은 보통 105cm(코트 6×7m)다. 전국족구연합회는 상황별로 11가지의 코트와 네트 규격을 예시하고 있다.

다음은 잘못 알기 쉬운 족구 규칙들.

① 서브를 넣을 때 땅에 튀겨서 넣으면 안 된다. 서브는 제한구역(3m) 안에서만 넣어야 하며 서브를 넣은 공이 네트에 닿고 넘어가도 그대로 진행된다.

② 공은 무릎 아래와 턱 위쪽만 사용해야 한다. 무릎 관절에 닿아도 안 되며 어깨나 가슴에 닿으면 실점이다.

③ 선수의 몸이 네트에 닿으면 무조건 네트터치 반칙이다. 공이 네트에 닿든 안 닿든 어떠한 경우라도 선수 몸이 네트에 닿으면 실점이다.

④ 선수의 몸이 네트를 넘어가도 안 된다. 공을 때린 이후든 그 이전이든 어떤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⑤ 점수는 3세트 15점제(듀스 상한 19점)이며 작전 타임은 세트당 1회씩 있다. 양 팀 점수합계가 20점일 때 테크니컬 작전타임이 있다. 선수교체는 언제라도 할 수 있다.

⑥ 선수는 4명이 기본. 일부 방송에선 5명이 하고 있지만 그것은 흥미진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⑦ 공을 발등으로 들어올리거나 밀어 넣으면 홀딩 반칙. 공이 몸에 머무르거나 누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