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 오로라월드 본사 디자인연구소 디자이너들이 새로 개발할 캐릭터 디자인 시안을 협의하고 있다. 디자인연구소는 해외 현지법인의 ‘디자인 및 마켓리서치센터’와 함께 상품 기획, 시장 조사, 캐릭터 디자인 등을 담당한다. 석동률 기자
《미국의 선물용품 전문잡지 ‘기프트비트’는 4월 캐릭터 완구(캐릭터를 모델로 만든 봉제완구) 브랜드 순위를 발표했다.
그 결과 ‘작은 이변’이 일어났다. 한국의 중소기업 오로라월드가 쟁쟁한 미국 브랜드를 제치고 3위에 오른 것이다. 10위 내에 든 브랜드 중 미국 이외 국가의 기업은 오로라월드가 유일했다.
1992년 세계 완구 시장의 40%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 자체 브랜드를 선보인 지 15년 만에 ‘무명(無名)’의 완구업체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한 것이다.
중국 등 후발 국가에 밀려 ‘한국에서 봉제완구 산업은 끝났다’는 위기감이 커질 때 과감하게 브랜드와 디자인 경영에 눈을 돌린 결과다.》
○ 완구업계의 ‘나이키’를 꿈꾼다
지난달 중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오로라월드 본사 전시장. 2000여 종의 캐릭터 완구가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세계 60여 개국에 오로라월드 브랜드로 팔리는 제품이다.
오로라월드는 지난해 매출액 468억 원, 순이익 35억 원을 올렸다. 해외 수출이 본사 매출의 91.4%를 차지한다. 또 해외로 수출되는 상품의 85%가 자체 브랜드 상품이다.
1981년 설립된 오로라월드는 캐릭터 완구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수출하는 무명의 완구업체였다. 1988년 OEM 수출로 ‘1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는 실적도 올렸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중국 등 후발국가의 맹추격이 시작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오로라월드가 택한 생존 전략은 브랜드 경영이었다.
오로라월드는 1992년 미국에 현지 법인을 세우고 처음으로 자체 브랜드를 내놨다.
자체 브랜드로 미국 시장을 뚫는 일은 쉽지 않다. 오로라월드가 자체 브랜드를 내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회사들이 OEM 주문을 끊기 시작했다. 미국 문화에 맞는 캐릭터 개발도 난관에 부닥쳤다.
하지만 현지에 디자이너를 파견하고 한국의 오자미를 응용해 완구 속을 솜 대신 콩이나 팥 모양의 플라스틱 알갱이로 채운 캐릭터 완구 등의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이는 전략으로 미국 시장에 안착했다.
1997년에는 영국 왕실 전용 백화점으로 유명한 해러즈 백화점에 입점하며 ‘명품 완구’라는 평판을 얻었다. 신흥 시장인 러시아에서는 점유율 40%를 차지하는 1위 기업이다.
2002년 브랜드 경영을 선포한 뒤 유통 채널별로 브랜드를 차별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백화점 등에서 팔리는 고가 브랜드는 ‘오로라 클래식’과 ‘오로라 베이비’로, 할인점은 ‘피플 팔스’로 차별화했다. 최근에는 선물용품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 회사 홍기우(60) 사장은 “회사의 사업을 세 단어로 말한다면 ‘캐릭터’, ‘디자인’, ‘브랜드’”라며 “우리가 모델로 삼는 경쟁 기업은 완구업체가 아니라 브랜드로 성장한 ‘나이키’와 ‘스타벅스’”라고 말했다.
○ 본사 직원 40%가 디자인 인력
오로라월드는 홍 사장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된다. 하지만 상품 개발과 해외 사업은 창업주인 노희열 회장이 직접 챙긴다. 브랜드와 디자인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노 회장이 ‘우리 회사의 보물’이라며 철제 책장이 한쪽 벽을 차지한 사무실로 안내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캐릭터 완구 디자인 파일이 책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창업 이후 개발한 4만7000여 종의 방대한 제품 개발 정보는 전자문서로도 제작돼 관리된다.
이 회사의 경쟁력은 매년 각국의 문화와 생활방식에 맞는 1000여 종의 제품을 신속하게 내놓는 ‘다품종 소량 생산’ 시스템에 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팔리고 있는 제품만 3500여 종에 이른다.
서울 본사의 디자인연구소와 미국 영국 일본 홍콩 러시아 등 9개국에 설립한 ‘디자인 및 리서치센터’로 이어지는 ‘글로벌 연구개발 체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본사 직원 98명 중 40%가 디자인 관련 인력이다. 매년 5000여 종의 시제품이 개발되지만 본사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 시장에 나오는 제품은 20%에 불과하다.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미국인을 겨냥해 작은 가방에 앙증맞은 강아지나 토끼 캐릭터 인형을 넣어 만든 ‘팬시 팔스’와 날고 싶은 꿈을 모티브로 만든 날개 달린 곰 인형 ‘위시 윙’ 등의 히트 완구가 이 글로벌 연구개발 시스템을 통해 나온 상품이다.
디자인 경쟁력은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어 냈다. 도자기, 칫솔 등을 생산하는 업체에 캐릭터를 제공해 사용료를 받고 있다. 지난해 이 회사 매출의 2.7%가 이 같은 로열티 수입이다.
○ 작지만 강한 글로벌 기업
오로라월드의 사무실에는 벽시계 5개가 붙어 있다. 글로벌 본사인 한국, 생산라인이 있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해외 판매법인이 있는 미국 영국의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다.
이 회사는 연구개발 중심의 본사와 생산과 판매를 담당하는 해외 법인이 수직 계열화된 독특한 사업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신속한 제품 개발은 물론 엄격한 품질 관리도 가능하다.
생산라인만 가동하는 중국 완구업체나 브랜드와 상품 기획에 전념하는 미국 등 선진국 완구업체와 비교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는 요인이다.
해외 판매법인과 공장은 2002년 구축한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을 통해 본사와 정보를 공유하고 실시간 의사소통을 한다.
이 회사 김용연 부장은 “이 시스템이 도입된 뒤 주문이 생산라인까지 넘어가는 시간이 12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었다”며 “제품 개발기간도 3개월에서 1개월로 짧아졌다”고 말했다.
본사 직원과 해외 현지 디자이너와 마케팅 담당자들이 1∼2년 후에 내놓을 신제품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글로벌 상품개발전략(PD)’ 회의도 한국과 미국에서 매년 6차례 열린다.
▼노사 상생 ‘2-3-5 원칙’▼
이익 20%→직원 30%→주주 50%→재투자
걀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