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순 경찰청장. 동아일보 자료사진
경찰청이 이택순 경찰청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내부 통신망에 올린 경찰관들에 대해 인사조치하는 등 특별관리 하겠다는 방침을 정하자 일선 경찰들이 다시 술렁이고 있다.
청와대와 행정자치부가 이 청장 사퇴불가 뜻을 분명히 하면서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퇴진 논란도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1일 경찰청의 방침이 전해진 뒤에도 경찰 통신망에는 비난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통신망에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자유발언대에 쓴 글을 문제 삼는다면 자유발언대가 아니라 ‘자유감시대’다”, “조직을 위해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을 특별관리 한다면 개탄스럽다”는 등의 반발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OO경찰서 박모 경위는 “조직이 다시 시끄러워지고 있다”고 일선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조직의 발전을 위해 쓴 소리를 하는 것인데 듣기 싫다고 입을 막으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내부의 의견개진을 막는다면 조용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외부로 터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쓴 소리에 불이익 주겠다는 발상은 유치”
이와 관련해 기자는 총경급 이상 고위간부를 포함한 일선 경찰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익명을 요구한 이들은 대부분 이번 사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청와대와 정부, 이 청장에게 여러 가지를 주문했다.
이들은 먼저 경찰청의 징계방침에 대해 잘못된 처사라고 입을 모았다.
“글이 개인의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악의적 비방이라면 제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조직발전을 위한 충정에서 의견, 주장, 수뇌부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를 문제 삼는 건 매우 비상식적이고 민주주의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무시한 발상이다.”
또한 이 청장에 대해 조직의 수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순간 기분 나쁘고 귀에 거슬린다고 불이익을 주겠다는 발상은 너무 유치하다. 조직 내부의 건전한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수장으로서 기본적인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다. 앞으로 조직이나 자신에 대해 아무도 말을 못하게 하겠다는 것인데 이해하기 힘들다.”
A총경은 “집단적 움직임이라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개별적으로 의견을 올렸다고 불이익을 준다면 누구도 수긍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쩌면 잠시 조용해질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영원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장관 잘못된 보고 받고 있어”
이들은 특히 노무현 대통령과 박명재 행자부장관이 잘못된 보고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B총경은 “대통령이나 장관의 말은 집단행동이나 도를 넘어선 주장을 한다면 막아야 한다는 것이지, 의견을 올리는 것에 불이익을 주라는 뜻은 아닐 것”이라며 “개개인이 글을 올리는데 집단적으로 올린다고 잘못된 보고를 받고 있다. 위에서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서 윗사람에 대해 의견 내면 하극상인가”
이들은 하극상이라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는 “아래서 윗사람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또는 용퇴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것이 과연 하극상이냐”라고 반문한 뒤 “하극상이라고 하기엔 명분과 법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다. 징계 요건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전망하며 “이미 일선에서는 얘기를 충분히 했다고 본다. 공은 그쪽(이 청장, 청와대)으로 넘어갔다”면서 “이런 식으로 압력을 가한다고 해서 억지로 입이 막아지진 않는다. 글을 올린 경찰관들에게 실제로 불이익을 줄 경우 더 큰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하라고 억지로 뭉치겠는가?”
C경위는 이 청장이 리더십을 가져야 된다고 주문했다.
“청장에 대한 조직원들의 불신은 취임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누적돼 왔다. 이번에 자신만 살고 부하들은 가혹하게 조치하는 부적절한 처신을 해서 폭발했다고 보면 된다. 대통령과 장관이 청장을 중심으로 뭉치라고 해서 억지로 뭉쳐지겠는가. 청장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런 조치는 분란만 더 일으키고 리더십만 손상될 뿐이다.”
D경위는 “사태가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은 국민이나 조직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위에서도 이쯤에서 수습에 나서고 일선 경찰들도 업무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양측의 자제를 주문했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