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에서 줍는 과학/김준민 지음/302쪽·1만8000원·지성사
시동을 건 자동차가 멈추지 않고 달리려면 연료가 충분해야 한다. 탐구도 마찬가지다. 지식은 호기심에서 출발하지만 끈기는 애정에서 나온다. 대상을 애정의 눈으로 관찰한 사진사에게 피사체는 자신의 본질을 보여 준다. 사랑하는 마음은 깊은 내공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이다.
자연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시인이건 화가이건 과학자이건 사랑해 주는 이에게 속살을 드러낸다. 구술 문제들은 비교적 짧게 질문을 던지지만 식물의 땅속줄기처럼 복잡한 쟁점을 숨겨 놓고 있다. 비약 없이 세밀하게 논리를 전개하려면 애정을 담은 탐구의 눈을 가져야 한다.
관찰의 눈은 사소한 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들풀 한 포기에도 자연의 깊은 본질이 숨어 있다. 인간도 하루의 일상이 쌓여 인생을 채워가듯 자연도 성장의 과정에서 생명의 임무를 다한다. 이 책은 일상 속 식물과 친해짐으로써 자연의 내면을 이해하는 친절한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
먼저 옛 사람들의 속담을 떠올려 보자. ‘도토리는 벌판을 내려다보면서 연다.’ 풍년에는 도토리가 별로 없지만 벼농사가 흉작이면 신기하게도 도토리가 많이 열린다. 먹을 것을 조절하는 자연의 오묘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은 모내기철과 도토리 꽃이 피는 시기가 같기 때문이다. 이때 비가 많이 오면 벼에는 유리하지만 상수리나무에는 불리하다. 자연에 대한 일상의 지혜에서도 과학을 배울 수 있다.
등산을 하다가 회색빛 반점으로 얼룩덜룩한 바위나 비석을 본 적이 있는가. 때 묻은 것처럼 보이는 이것은 ‘지의류’다. 땅의 옷(地衣)이란 뜻처럼 땅바닥에 붙어 자라는 식물이다. 지의류는 공기 중 수분으로 생장하기 때문에 대기오염에 민감하다.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 진행되는 대기의 변화를 알려 주는 고마운 식물이다. 조그만 존재에서도 복잡한 지구의 대기 상태를 푸는 실마리를 배워 보자.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자연 지식들이 오히려 자연을 괴롭게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반달곰은 행동반경이 20∼30km²다. 지리산은 인간에게는 휴양지이지만 두 마리의 반달곰이 서식하기에는 순수 야생 공간이 비좁은 산이다. 반달곰을 지리산에서 살게 하는 것이 옳은가. 자연은 인간의 지식을 겸허하게 하는 회초리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인 만큼 산림과 식물에 대한 이해는 국가를 더 잘 아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다. 허리를 낮추고 말 못하는 생명들이 내는 주장에 귀 기울여 보자. 문제 해결은 언제나 이해하려는 마음의 눈에 잡히는 법이니까.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