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고향 사랑 논란이 일본 열도를 달구고 있다.
발단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정부가 최근 ‘후루사토(고향)세’를 신설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부터다.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이 행정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내는 주민세 중 10%가량을 납세자가 태어난 고향에 나눠 주자는 것이 이 세금의 취지다.
당연히 재정이 취약한 지자체들은 두 손을 들어 환영하고 있다. 반면 도쿄(東京) 등 대도시는 강력히 반발해 후루사토세 공방은 한국의 ‘수도 이전 논란’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설명을 들어 보면 후루사토세는 언뜻 솔깃한 데가 있어 보인다.
예컨대 오키나와(沖繩) 현의 2005년 인구 1인당 주민세 수입은 1만326엔(약 8만2000원)이다. 이에 비해 도쿄 도는 3만2782엔으로 3.2배나 된다. 지자체 간의 지나친 세수 격차를 없애야 한다는 이상(理想)을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시골 지역의 지자체들은 이런 한탄도 늘어놓는다.
“의료 교육 복지 등 다양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해 어린이들을 키우는 것은 우리다. 하지만 이들이 장성해서 직장을 잡고 세금을 내는 곳은 도쿄다.”
일본 정부는 “후루사토세는 납세자 본인이 원할 때만 납세액 일부를 고향에 보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납세자의 의사도 존중하는 결과가 된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명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일본 국민은 드물다.
일본 정부와 여당이 후루사토세를 추진하는 진짜 속내는 아베 정권의 명운이 걸린 7월 참의원 의원 선거에서 승패의 열쇠를 진 ‘농촌표’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다.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가 추진 동력인 셈.
실제로 세제(稅制)의 대원칙에서 보면 일본의 정부 여당이 내건 논리들은 얄팍한 눈속임이다.
첫째, 한지역에 사는 주민들 간 세액이 다르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둘째, 지자체가 어린이들의 의료 교육 복지를 위해 제공한 서비스의 대가는 부모들이 이미 냈다.
셋째, 납세자가 세금의 용처를 지정하는 것은 조세제도의 토대를 흔드는 일이다. 예컨대 소득세와 법인세의 용처를 납세자에게 정하게 하면 빈곤층을 위한 복지예산은 씨가 마를 것이다.
일본의 후루사토세 논란을 지켜보면서 ‘현명한 납세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지혜로운 유권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괜한 비약일까.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