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위스 출신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건축을 ‘삶을 위한 기계’라 일컬었다. 그의 제자인 한국 근대 건축의 선구자 김중업은 ‘(건축이라는 공간은) 꿈을 꾸고 싶어져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두 문장 사이에서 당대의 시인이자 건축평론가인 함성호 씨의 스트레스는 시작된다. 건축이 구체적 삶을 환유한다면 시(詩)는 현실에서 결락된 인간의 본질적이고도 심원한 열망과 꿈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함 씨에 따르면 20세기 이후 인간의 모든 기획은 삶과 꿈의 총체적 분리현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삶을 추구하면 꿈이 사라지고, 꿈을 꾸다 보면 현실에 거대한 흠집이 생긴다. 이것은 모든 건축가(및 예술가)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사항인 동시에 어떤 건축가도 시원스레 풀지 못한 문제다. 함 씨는 꿈과 현실 사이의 이 지난한 어긋남을 시인과 건축가라는 두 가지 시각을 포개어 진술한다.
르코르뷔지에와 김중업이라는 하나의 원론에서 화두를 끄집어내지만 그가 더 공들여 문제를 세공하는 건 그의 선배나 동년배들의 작업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건축평론가 함 씨의 현장비평 기록과 시인 함 씨의 미학 에세이가 뫼비우스 띠처럼 겹쳐 있다.
건축 이야기를 들으며 시를 떠올리거나 미술이나 시 얘기에서 건축 및 근대의 문화사를 통시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건 저자에 대한 선입견이 아니라 행간에 감춰진 저자의 의도에 의해서이다. 그래서인지 간혹 지극히 현실적인 얘기가 꿈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독자 나름의 평점이 갈릴 지점이기도 한 만큼 좀 더 미묘한 재미를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건축은 자연적 공간을 인간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해 삶의 공간으로 바꾸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건축의 한계이자 정점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한 개인의 상상력이나 미적 감각이 필연적으로 투영될 수밖에 없는 건축은 그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꿈을 그대로 표현해 낼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시인의 입장과 건축가의 입장을 동일시한다. 그러면서 그만의 역설이 잠정적으로 완성된다.
책의 중심에 할애된 현장비평은 저자가 이러한 관점에서 파악한 근대건축의 비애와 질곡을 다루고 있다. 그 비애와 질곡은 아직도 우리의 삶과 문화를 지배하는 근대라는 유령이 가설한 불완전한 건축물들이다. 책 표지에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녹슨 철근 더미는 그런 의미에서 적체된 우리 모두의 심리적 문화적 스트레스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부식된 채 무너지지 않는 근대의 아집과 구멍이 숭숭 뚫려 버린 꿈들. 때로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도 꿈의 실현일 수 있지 않을까.
강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