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습니다. 현충일을 앞두고 모처럼 호국영령도 기리고 신록 속을 거닐 겸 짬을 냈습니다.
정문을 지나 충혼탑에 분향한 다음 그 뒤편 영현승천상(英顯昇天像) 주위의 벽면에 새겨진 전사자들의 이름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6·25전쟁 등에서 전사했지만 유해를 찾지 못한 10만4500위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주인을 잃은 이름들이 빼곡히 새겨진 검은 석판 아래 순국선열들의 젊은 시절 흑백사진과 차마 그들을 잊을 수 없는 부모형제의 애절한 심정을 담은 편지 등이 조화와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빛바랜 사진 속에 교복, 혹은 한껏 멋 부린 양복 차림으로 포즈를 취한 그들은 참 젊었습니다. 반세기 전엔 청춘의 푸른 꿈으로 심장이 고동치던 싱그러운 젊은이들이었는데 지금은 이 산하 어느 곳에 애처로운 육신을 뉘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가슴이 저렸습니다.
5만4000여 위의 유해가 안장된 현충원 묘역은 고즈넉했습니다. 가지런히 줄지어 선 묘비마다 붉고 노란 꽃다발과 태극기가 놓였고 새소리가 이따금 정적을 깼습니다. 현충일에 붐빌 것을 우려해 미리 참배 온 유족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습니다.
주름이 깊이 팬 할머니들의 얼굴엔 강산이 다섯 번 바뀔 만한 세월이 흘렀어도 지워지지 않은 그리움과 회한이 역력했습니다. 무심한 시간도 그분들의 눈물샘을 마르게 하지 못했나 봅니다.
그래도 어린이들은 천진난만했습니다. 경찰충혼탑 옆에선 몇몇 초등학생이 휴대전화 게임에 정신이 없었고, 이승만 대통령 묘역 근처에선 엄마를 따라 나온 어린 소녀가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 놓고 한가롭게 책을 읽었습니다.
노인부터 어린이까지, 현충원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대부분 수수한 차림새의 ‘우리 이웃’이었습니다. 평범하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소중한 삶을 바친 선열의 유족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류(主流)’일 것입니다.
문득 워싱턴 특파원 시절 가 본 알링턴 국립묘지가 떠올랐습니다. 애국심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그곳은 역사교육의 현장이자 관광 명소입니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 줄을 잇고 외국 관광객의 발길도 잦습니다. 이에 비해 동작동을 찾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합니다. 현충원이 2만7000여 위의 무연고 묘소에 꽃을 바치기 위해 벌인 ‘한 사람 한 송이’ 헌화운동에 5월 한 달 동안 참여한 개인은 8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이 중 5명은 현역 군인입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기회주의가 득세한 실패한 역사’로 보는 일부 사람만 호국영령을 외면하는 게 아닌 것 같아 씁쓸합니다.
동작동 언덕에선 한강 양편의 아파트와 고층건물 숲, 올림픽대로의 자동차 물결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50여 년 전 절망과 탄식만이 가득했던 폐허 위에서 땀과 피, 눈물로 이룬 성취가 꿈만 같습니다. ‘한강의 기적’은 순국선열들이 안장된 동작동 언덕에서 발원(發源)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열들이 꿈꿨을 풍요로운 세상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망은(忘恩)의 세태에 물든 도시에 저녁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하얀 구름이 산들바람에 흘렀고 석양에 비친 풍광은 더욱 눈이 부셨습니다. 역사와의 산책을 마치고 맞는 일상의 평온함이 한없이 감사했습니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