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창경궁 통명전(通明殿)에서 열린 ‘궁중혼례’ 시연 행사는 주말 고궁을 찾은 관람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이날의 잔치 분위기는 “고궁을 박제화된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창경궁관리소의 취지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4개월 전 문화재 전문가들은 창경궁관리소가 애초 계획했던 문정전(文政殿)이 임금이 정사를 봤던 곳이라 궁중혼례 장소로 어울리지 않으며 돈을 받고 혼례를 대행하는 것은 “고궁을 예식장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본보 2월 7일자 A23면 참조).
이런 지적을 감안한 듯 실제 영조와 정순왕후의 동뢰연(同牢宴)이 열렸던 통명전으로 장소가 바뀌었고 상품화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이날 시연의 주인공으로 선정된 예비부부가 무료로 궁중혼례를 치르게 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혼례를 주관한 ‘민족혼뿌리내리기시민연합’이란 단체의 혼례·돌잔치·칠순연 상품 카탈로그가 버젓이 배포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단체는 서울 전쟁기념관 궁중대례청에서 돈을 받고 황실 전통혼례를 대행하고 있다. 이 카탈로그에는 웨딩 촬영 스튜디오와 한복 드레스 광고도 있었다. 또 이날 행사의 정식 명칭이 ‘창경궁 궁중혼례’인데도 사회자는 “창경궁 궁중혼례 왕과 비”라고 반복해서 표현했다. ‘왕과 비’는 이 단체가 카탈로그에 명시한 상품의 이름(‘왕족체험 왕과 비’). 간접광고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날 궁중혼례의 복식과 내용 중에는 이 단체의 황실혼례 상품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많았지만, 영조가 정순왕후를 맞이한 혼례 절차를 기록한 ‘가례도감의궤’를 철저히 고증했는지 검증할 전문가는 눈에 띄지 않았다.
궁중 문화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기 위한 행사라는 점에서 창경궁관리소의 노력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러나 자칫 ‘또 하나’의 궁중혼례 상품에 창경궁이라는 유서 깊은 고궁을 빌려 주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고증과 함께 상업화에 대한 분명한 선 긋기가 필요하다. 낡고 썩지 않게 하기 위해 문화재에 손때를 묻히겠다는 애초 취지가 올곧게 지켜지길 간절히 바란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