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붕괴된 서울 서대문구 가좌역 선로의 지반이 가라앉기 직전 대규모 승객을 태운 열차가 이 지점을 통과한 것으로 조사돼 자칫 대형 참사가 일어난 뻔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사고 9일 전에는 코레일(옛 철도공사)이 이상 징후를 발견해 철도시설공단과 시공사 측에 점검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총체적인 안전불감증=4일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붕괴 17분 전 가좌역 직원이 선로 이상을 보고했음에도 코레일은 사고 7분 전과 12분 전에 각각 승객 300여 명을 태운 통근열차를 통과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가좌역 직원은 가좌역장에게 “철로가 불안하다”고 보고했고 역장은 오후 5시 정각 시설관리 책임자 등에게 서행 운행 등의 안전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한 뒤 5시 5분경 선로관리부서인 수색시설사업소에 보고를 했다.
하지만 코레일은 선로 이상을 파악한 뒤에도 열차 운행을 중단시키지 않아 문산→서울행 2026호와 서울→문산행 2023호 통근열차가 각각 승객 300여 명을 태우고 5시 2분과 7분에 가좌역에 정차한 뒤 통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고양기지에서 정비와 청소를 마치고 승객을 태우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하던 H1317, H1061호 등 회송 열차 두 편도 사고 7분 전과 4분 전에 붕괴 지점을 지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 측은 “통근열차는 정차했다 출발했기 때문에 시속 10km도 안 되는 속도로 붕괴 지점을 지났고, 회송 열차도 시속 20km 미만으로 서행시켜 큰 문제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코레일 관계자는 사고 9일 전인 지난달 25일 “선로가 흔들리고 벌어지는 등 이상 징후가 발견돼 철도시설공단과 감리단, 그리고 시공사 측에 점검을 요청했으나 모두 묵살됐다고 밝혔다.
▽다른 열차들에도 여파=가좌역 선로 지반 붕괴사고로 KTX 등 다른 열차들도 안전에 위협을 받고 있다.
KTX의 경우 서울역과 용산역으로 도착한 뒤 가좌역을 지나 고양기지로 이동해 정비를 받아야 하지만 철로가 끊기는 바람에 서울역이나 광명역, 용산역에서 간이정비만 하고 바로 운행에 나서고 있다.
정비 시간이 길어지면서 4일 KTX는 30분가량,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일반열차는 10분∼2시간 30분 지연 운행됐다.
한쪽 방향으로 달리게 돼 있는 경부선 2개 열차와 호남·전라·장항선 14개 열차는 회차 지점인 수색역에 가지 못해 운행이 취소됐다.
사고를 수사 중인 서울 마포경찰서는 가좌역장 등을 소환해 사고 경위를 조사한 뒤 도급, 하도급, 감리, 설계사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해 업무상 과실, 건설기술관리법 등의 혐의가 확인되면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