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약품은 회사 매출의 22.8%를 차지하는 주력 제품인 ‘까스활명수’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 1996년 표준 소매가가 500원으로 정해진 뒤 11년째 대부분의 약국에서 500원에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약국이 자율적으로 판매 가격을 결정할 수 있지만 ‘500원’이라는 소비자 인식이 워낙 강하고 약국의 가격 전체를 판단하는 ‘지표 상품’으로 인식돼 가격 인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많은 기업이 ‘500원 딜레마’에 시달리고 있다. 500원 단위로 가격을 정하면 소비자의 거부감을 줄이는 장점이 있지만 한번 정해진 가격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소비자 거부감을 줄이는 ‘500원의 마술’
5일 훼미리마트에 따르면 이 회사의 편의점 매장에서 판매하는 상품 3000여 종 중 22%가 500원, 1500원, 2500원 등으로 가격이 500원 단위로 끝난다.
잔돈이 남지 않는 편의성과 소비자의 가격 저항이 적기 때문에 과자, 담배, 음료수 등 소액 상품의 가격을 500원 단위로 책정하는 사례가 많다.
훼미리마트가 자사 편의점에서만 판매하고 있는 자체브랜드(PB) 컵라면인 ‘500컵라면’은 이 같은 전략이 맞아떨어진 사례다.
유명 브랜드에 비해 인지도는 낮지만 지난달 33만8000개가 팔렸다. 같은 기간 23만6000개가 팔린 농심의 컵라면인 ‘신라면 컵’(700원)보다 10만 개 이상 많이 팔린 것이다.
훼미리마트 관계자는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를 위해 500원짜리 동전 하나로 살 수 있는 ‘500컵라면’을 내놨다”고 말했다.
제품 개발 단계에서 500원이라는 가격을 강조하는 ‘숫자 마케팅’도 활발하다. 광동제약의 비타민 음료 ‘비타500’은 가격을 500원으로 책정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00원 주화 유통액은 2004년 말 기준 6275억 원에서 2005년 7114억 원, 2006년 7564억 원으로 늘었다.
○가격 전략으로 ‘500원의 함정’을 벗어나라
하지만 500원 가격 전략은 가격 인상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 때문에 100원 단위의 가격 인상이 쉽지 않은 데다 500원 단위로 가격을 갑자기 올리기도 어렵다.
KT&G 관계자는 “2004년 12월 담배가격을 인상할 때 500원 이상의 인상 요인이 있었지만 가격 저항을 우려해 500원만 올렸다”고 말했다. 현재 KT&G의 제품 42종 가운데 23종의 가격이 500원 단위로 끝난다.
‘500원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한 기업들의 고민도 크다. 제품의 질을 높여 가격 인상을 정당화하거나 거꾸로 제품의 양을 줄여 가격 인상 효과를 내는 방법이 주로 쓰인다.
농심은 3월 과자 등 일부 제품의 값을 500원에서 600원으로 올렸다.
농심 관계자는 “가격을 올린 대신 식품 첨가물이나 팽창제 등을 쓰지 않는 등 질을 개선했다는 점을 알리고 있다”며 “제품의 양을 줄이는 방식은 고객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케팅인텔라이트 안상훈 대표 파트너는 “프린터와 토너처럼 서로 보완적인 성격의 상품을 묶어 가격을 조정하거나 지역, 유통경로별로 제품 가격을 달리하는 차별화 전략으로 실질적인 가격 인상 효과를 볼 수 있다”며 “가격 인상 전후에 고객에게 정당한 이유를 설명하는 커뮤니케이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