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 육수에 황태 몸통만 끓여 진부령 황태맛 그대로
차가운 눈과 매서운 바람, 한낮의 태양빛.
명태는 제 몸이 얼고 녹는 혹독한 시련을 수십 차례 겪어야 비로소 황태라는 이름을 얻는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황태골’(옛 전주식당·02-512-9799)은 황태탕으로 유명하다.
황태란 ‘놈’은 묘하다. 명태가 마르면서 황태가 되면 단백질 양이 2배로 늘어나 56%(지방은 2%)나 된다. 콜레스테롤이 거의 없고 간을 보호하는 메티오닌 성분이 풍부하다.
이곳은 질 좋은 황태와 주인장 김원화(62) 씨의 30여 년 내공 덕분에 숙취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주인장의 말
맛 좋기로 소문난 진부령 황태는 3, 4월에 나오는데 요즘은 보관기술이 발달해 제철이 따로 없습니다.
1975년부터 황태탕을 끓이면서 얻은 결론이 있죠. 황태는 맛이나 영양 면에서 매우 뛰어납니다. 이런저런 맛을 섞기보다는 그 자체의 맛을 제대로 살려야 최고의 황태탕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황태탕은 황태 그 자체죠. 모시 주머니에 황태에서 발라낸 뼈와 머리 7∼8kg을 넣은 뒤 센 불에서 하루를 꼬박 끓여 육수를 만듭니다. 무나 다른 야채, 양념은 일절 넣지 않습니다. 야채를 넣으면 텁텁하거나 떫은맛이 생겨 황태 특유의 맛이 약해집니다.
이 육수에 3, 4cm 간격으로 자른 황태 몸통과 미나리, 콩나물을 넣고 끓여 상에 냅니다. 콩나물은 살짝 데친 상태에서 넣어야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가끔 손님들이 구수하고 시원한 맛의 비밀을 묻죠. 황태 빼고는 미나리와 콩나물만 들어간다고 설명하면 다들 깜짝 놀랍니다. 혹시 싱겁다고 느끼는 분들을 위해 새우젓과 특별하게 만든 간장 소스를 제공하죠.
○ 주인장과 식객의 대화
∇식객=황태탕을 꽤 먹어본 편이지만 이곳 황태는 특별합니다. 한마디로 ‘잡맛’이 없네요. 깊고 묵직한 맛입니다.
∇주인장=‘깔짝깔짝’ 하는 그런 맛이 아니죠. 30년간 황태를 끓이면서 황태에게 많이 배웠어요. 제 맛을 그대로 내달라는데 그렇게 해야죠.
∇식=어떤 것이 좋은 황태입니까.
∇주=좋은 황태는 껍질이 ‘노르끄름’해요. 손으로 만져도 뻣뻣하지 않고 부드러운 느낌이 듭니다. 요즘처럼 손질된 황태가 나온 것은 10년밖에 안 됩니다. 이전에는 둥그런 황태를 두드려 손질하느라 어깨며 손이며 성할 때가 없었지요.
∇식=딸려 나오는 간장 소스가 달착지근하면서도 톡 쏘는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주=할 말이 많죠(웃음). 어쩌면 육수보다 더 공을 들여요. 우선 끓는 물에 마늘 생강 청양고추를 넣고 12시간 정도 끓입니다. 여기에 감초와 녹각을 조금 넣은 뒤 5, 6시간 푹 끓여요. 그런 다음 집에서 담근 조선간장을 넣고 2, 3시간 끓이다 재료들은 모두 건져낸 뒤 다시 30시간 이상 끓여 냅니다.
∇식=왜 황태를 시작하게 됐나요.
∇주=지난해 시아버지가 92세로 돌아가셨는데 생전 황태에 콩나물을 넣어 끓여 드리면 좋아하면서 맛있게 드셨습니다. 그래서 그 맛을 살려 장사를 시작한 거죠.
황태탕, 간장게장, 황태구이가 이 집이 자랑하는 3합(三合)이다. 황태탕(5000원)을 시키면 맛깔스러운 전라도식 밑반찬 6가지가 딸려 나온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