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을 세울 때 어느새 기준이 되어 버린 지역이 서울 강남구이다. 양극화 문제만 해도 그렇다. 먼저 강남구의 명문대 진학 실적을 앞세우고 다른 동네와 비교한 뒤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성토한다. 소외지역 학생이 더 많이 명문대에 갈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그래서 나온 대표적인 정책이 올해 시작되는 ‘내신 위주 입시’다.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강남은 우수한 학생이 많으니까 내신이 불리하고, 다른 지역은 유리해 학생들의 진학률도 그만큼 올라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학 측에 따르면 내신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은 주로 ‘큰 학교’에서 나온다. 강남만 해도 한 학년이 500∼600명이나 될 정도로 큰 학교들이어서 상위등급 학생 수도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전체 학생의 몇 %에 드느냐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므로 모집단이 클수록 상위등급 수도 많아지는 이치다. 반면 한 학년이 100명 남짓한 농촌 학교는 비율은 같아도 수는 크게 줄어든다.
▷강남을 위축시키려던 정책 입안자들이 땅을 칠 일이다. 테이블 위에서 제도나 ‘의협심’만 갖고 접근한 탓이다. 강남은 놔 두고 저소득층 처지가 되어 교육 현실을 바라봤어야 했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고심했어야 했다. 마침 경북대가 소외계층 가운데 수학 과학에 재능 있는 학생들을 찾아내 영재교육을 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서울 구로구도 우수 학생들을 뽑아 논술 강의를 직접 해주기로 했다. 민족사관고는 지난해부터 5명씩 저소득층 학생을 입학시켜 전액 무료로 교육을 해오고 있다.
▷소외계층들은 이런 실질적 지원이 도움이 된다. 싼값에 과외를 해주는 ‘방과 후 학교’가 그들에겐 훨씬 고마운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3년이 넘은 지난해 5월에 이르러서야 “방과 후 학교는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꼭 해야 할 사업”이라고 했다. ‘진보’니 ‘개혁’이니 하는 거대 담론에 빠져 있다 뒤늦게 얻은 깨달음이었나. 교육 분야야말로 ‘낮은 데로 임하라’는 말이 가장 맞아떨어지는 곳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