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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62년 앨커트래즈 탈옥 미스터리

입력 | 2007-06-11 03:04:00


그들의 탈옥 계획은 철저했다.

존, 클래런스 앵글린 형제와 프랭크 모리스는 감방 뒤편의 감시가 소홀한 통로로 연결되는 환기통 주변의 시멘트를 긁어내기 시작했다. 훔친 숟가락과 진공청소기 모터를 이용한 전기드릴을 사용했다. 일단 구멍이 뚫리자 가짜 보조 벽으로 위장했다.

통로 끝엔 감옥 밖으로 연결되는 수직갱이 있었다. 수직갱 입구는 쇠창살로 막혀 있었지만 이들은 리벳을 제거한 뒤 비누로 만든 가짜 리벳을 끼워뒀다. 그리곤 육지까지 건너갈 뗏목을 만들기에 충분할 만큼의 레인코트도 훔쳐뒀다.

1962년 6월 11일 이들은 교도소 감방을 빠져나가 4.6m 높이의 울타리를 넘어 유유히 사라졌다. 감방 침대 위엔 미리 이발소에서 훔친 머리털 뭉치를 붙여둔 가짜 머리인형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후 세 탈옥수는 발견되지 않았다. 연방수사국(FBI)의 수사가 시작됐지만 나흘 뒤 클래런스의 사진이 담긴 가방이 근처 섬에서 발견됐을 뿐 그들의 행방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더 록(The Rock)’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앨커트래즈 연방교도소. 미국 샌프란시스코 만의 바위섬인 이곳은 1850년대 캘리포니아에 금광이 발견되면서 몰려들기 시작한 선박들의 뱃길 안내를 위해 처음 등대가 세워진 이래 미군의 요새와 군 교도소로 이용됐다.

1934년 흉악범들을 감금하는 연방교도소로 전면 개조된 이곳은 철저한 감시와 통제 속에 어떤 개인적 자유도 허용치 않은 악명 높은 교도소가 됐다.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1934년부터 4년 반 동안 독방에서 지내다가 다른 감옥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이들 세 탈옥수는 당시 악천후 속에서 익사했을 가능성이 훨씬 큰데도 이들이야말로 ‘탈출 절대 불가’라는 앨커트래즈의 신화를 깨뜨린 유일한 죄수들이라는 또 다른 신화를 만들었다.

이 탈옥 스토리는 캠벨 브루스의 논픽션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디스커버리 채널은 레인코트 50개로 육지까지 무사히 도달하는 실험을 통해 이들의 생존 가능성을 입증해 보였다.

앵글린 형제에게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인이 찍힌 엽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친척도 나타났다.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운명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고 그들에겐 100만 달러의 현상금이 붙어 있다.

어쨌든 이들이 탈출한 이듬해 앨커트래즈 교도소는 문을 닫았고 이곳은 이제 죄수의 기분을 맛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샌프란시스코의 관광 명소가 됐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