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이 10일 막을 내렸다. 이번 포럼은 러시아를 연 6% 이상 고속 성장의 길로 올려놓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집권 마지막 해에 열려 주목을 끌었다.
올해로 11번째를 맞은 이번 포럼에는 65개국에서 8966명의 기업 임원과 정부 관료가 참석했다. 한국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신흥시장경제와 한국의 통상정책’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지멘스, 씨티그룹, 모토로라, 셰브론, 코카콜라 등 30개국, 120여 명의 최고경영자(CEO)도 이번 포럼에 나와 비즈니스 기회를 찾았다.
경제 분야에서 푸틴 대통령의 왼팔 역할을 하는 게르만 글레프 러시아 경제발전통상부 장관은 경제포럼을 전후해 러시아 기업과 외국 기업 간 총 135억 달러의 계약이 성사됐다고 밝혔다. 그는 “애초에는 계약액을 30억∼50억 달러로 예상했는데 액수가 크게 늘어 우리도 놀랐다”고 말했다.
미국 보잉사는 이번 포럼에서 최신 787드림라인 항공기 22대(20억 달러 어치)를 러시아 아예로플로트 항공사에 판매하기로 계약했다. 외국 기업들이 약속한 직접 투자 규모도 지난해 포럼의 세 배를 넘었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는 경쟁적으로 러시아에 공장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삼성전자도 5700만 달러를 들여 모스크바 남쪽 도시 칼루가 시에 TV조립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글로벌 기업의 투자 약속은 급팽창하는 러시아 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 기업들이 집권 말기의 푸틴 정부에 미운털이 박히면 비즈니스를 더 확대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에 투자를 결정했다는 말도 나왔다. 모스크바의 한 외국 기업 간부는 “러시아 정부 관료들에게서 ‘사업을 확장하려면 상품을 무조건 팔려고만 하지 말고 직접 투자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소리를 여러 차례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러시아 정부는 “외국 기업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 행렬에 끼어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둔화, 러시아의 자원 의존형 산업 기반, 내년 3월로 다가온 불투명한 대선 변수로 러시아 경제의 ‘장밋빛’ 미래가 말처럼 실현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 투자를 앞둔 외국 기업들은 이래저래 복잡한 심경이다.
정위용 모스크바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