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워싱턴이 한미동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각각 고심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공통 가치체계 즉 시장경제, 법치주의, 민주주의 확립 등 두 나라의 기본 골격이 되는 유사점은 양국 관계에 좋은 버팀목이 된다.
한미의 국가이익이 지금까지처럼 미래에도 계속 일치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가치체계는 일치하지만 국가이익은 달라지는 충돌 공간이 대중국 정책을 놓고 생길 수 있다. 두 나라는 부상(浮上)하는 중국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 볼 때 한미동맹이 굳건한 반면 중국이 동북아의 맹주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중국의 영향력 팽창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은 중국을 끌어안을지, 견제할지에 대한 장기 전략을 명확히 내놓지 못했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는 어느 한 순간을 상상해 보자. 한미 양국은 동북아에서 누가 지도국인지, 누가 위협국인지 셈법이 다를 수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경계심을 제외한다면 한중 양국은 북한 핵 해결 등 중요한 사안에서 이해를 같이한다. 한국은 2002년을 기점으로 미국과 일본보다 중국과의 교역량이 더 많아졌다. 또 미일동맹이 유례없이 밀착되는 상황에서 한중 양국은 일본의 민족주의 부상을 한목소리로 경계한다. 2004년 발표된 한국의 장기안보전략구상은 중국을 ‘포괄적 협력적 동반자’로 규정하면서 군사 협력의 증진을 강조했다.
미국이 떠오르는 중국을 두고 지금처럼 충돌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이 아니라 중국을 상대로 대결적인 전략을 채택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은 미국의 봉쇄정책을 따를 것인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동북아의 누구라도 태평양 건너편의 미국과 코앞의 중국 가운데 한쪽만 선택하는 일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2006년에 어느 저명한 학자는 “미국이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를 늦추려 하거나, 외교적 고립을 모색한다면 동북아에서 미국의 입지는 동맹국에서조차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에는 기술격차 축소에 따른 중국경계론, 고구려를 자국 역사로 만들려는 동북공정에 대한 의구심, 북한 내 영향력을 중국에 뺏기지 않으려는 심리적 갈등이 남아 있다.
가치가 다른 한미 두 나라가 장기적으로 공동의 이익을 어떻게 키워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한중 간 가치체계는 달라도 경제이익을 공유하려는 점에선 낙관적 기류가 형성돼 있다.
미중 양국이 손잡는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라면 한국은 훨씬 정책선택의 여지가 넓어진다. 중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미동맹을 강화할 수 있다. 현재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중국을 봉쇄 대신 ‘책임 있는 이해 상관자(responsible stakeholder)’가 되기를 주문한다. 강대국으로서 이익만 좇지 말고 인권, 민주주의, 자유무역 신장이란 면에서 다른 국가의 모범이 되어 달라는 뜻이다. 중국이 급속한 군사력 증강을 걱정하는 미국 지도부에 ‘패권국을 지향할 의지가 없다’는 우호적 신호를 보낸다면 문제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비관적 시나리오 아래에선 간단치 않은 파문이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이 갈등하고, 미국이 일본을 핵심 동맹세력으로 끌어안으며, 아시아의 다른 국가가 중국에 기운다면 한국은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한국 정부는 ‘미리 결정하지 않겠다’는 전략으로 어려운 질문을 피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비관적 순간이 닥치면 한국은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없다. 한미동맹이 21세기에도 지난 50여 년처럼 굳건하게 유지되려면 두 나라는 거인이 된 중국과 안정적 관계를 어떻게 확보할지 해법을 찾아야 한다.
데이비드 강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 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