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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기자의 퀵 어시스트]이상민-서장훈 엇갈린 운명

입력 | 2007-06-13 03:01:00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농구를 끔찍이 사랑했다.

현대 소속의 남녀 선수들을 자주 불러 격려했고 틈만 나면 훈련장이나 경기장을 찾았다.

그런 정 회장이 1994년 여름 경기 이천시의 현대전자 공장에서 아마추어 현대전자와 연세대의 연습경기를 지켜봤다. 손녀와 함께 하프라인 근처에 자리를 잡은 그의 눈에 한 선수가 눈에 들어 왔다. 엄청난 키의 그 선수는 덩크슛을 5개나 하며 혼자서 50점 가까이나 기록했다. 연세대 2학년이던 서장훈이었다.

평소 선수 스카우트와 작전에도 관여할 만큼 애정이 많던 정 회장은 “쟤가 한국 사람이 맞느냐. 꼭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아직 진로를 결정할 때도 아니었으나 서장훈은 현대전자의 적극적인 러브콜에 가계약까지 했다. 하지만 나중에 신생 진로(현 SK)에 지명권이 부여되면서 현대 입단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런 서장훈이 12일 현대에 뿌리를 둔 KCC 입단식을 가졌다. 정 회장의 막내 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 역시 농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유명하다. 모교인 용산고 농구부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정 회장은 2001년 2월 재정난에 허덕이던 현대를 인수해 프로농구에 뛰어들었다. 정 회장은 지난 시즌 KCC가 최하위에 그치면서, 자유계약선수(FA)인 서장훈의 영입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을 오랜 세월이 흘러 서장훈이 현대 가문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장훈은 “참 묘하다. 대학 시절의 마음가짐으로 정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뛰겠다”고 말했다. 농구 인생의 황혼기를 맞아 새로운 각오를 밝힌 것.

그러나 그의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부모 형제 다음으로 가까운 대학 2년 선배 이상민이 자신의 KCC행에 따른 보상선수가 돼 삼성으로 옮기게 된 때문이다.

“KCC로 오게 된 것은 상민이 형 영향도 컸다. 가슴이 아프다.”

현대 시절 정주영 회장에게 귀여움을 받았던 이상민은 줄곧 한팀에서 뛰었던 프랜차이즈 스타(연고지 스타, 팀을 대표하는 스타)였다. 서장훈과 이상민의 엇갈린 운명이 아이러니하다.

김종석 기자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