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두 주인공이 사랑을 확인한 곳이 피렌체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이었다. 소설가는 돔을 사랑의 배경으로 처리했지만 이 책의 저자 로스 킹은 그들이 발을 딛고 있는 돔 자체의 경이에 심취했다.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하늘을 덮고 있는 이 기적적인 건축물이 완성되는 과정을 해박한 문화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처럼 풀어낸다.
건물의 설계원안자도 지름이 36m나 되는 거대한 돔을 만드는 방법을 몰랐다. 시민들은 ‘토스카나 지방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성당’을 짓고자 하는 열망과, 언젠가는 그것이 이루어지라는 믿음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기초공사만 끝난 채 50년간 방치됐던 돔은 공사를 시작한 지 16년 만인 1436년 완공식을 가졌다. 거의 70년이 걸린 피렌체 시민의 길고 무모한 꿈을 완성시킨 사람이 바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였다.
브루넬레스키는 르네상스 이후 500년간 서양회화를 지배하는 ‘선원근법’의 원리를 발견해 명성을 날렸다. 단테 연구자이자 자명종시계와 권양기(윈치) 등 각종 건설 기계를 만든 발명가이기도 했다. 미켈란젤로와 수위 다툼을 벌일 만한 추남인 그는 더러운 옷을 입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 세속적인 이해에 무관심했던, 열정적인 르네상스 천재였다.
책은 소설처럼 편하게 읽힌다. 브루넬레스키와 평생의 숙적 기베르티가 피 말리는 경쟁을 벌이고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같은 위대한 천재들이 단역으로 등장한다. 독자는 대성당 돔의 외벽을 구경하고 기념사진이나 찍고 내려오는 관광객이 되는 게 아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15세기 피렌체의 한 거리에 내려앉아, 주인공들의 극적인 성공과 좌절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어느 날 아침 뚝딱하고 건축물이 솟아오르는 것밖에 본 적이 없는 요즘 사람들에게 돔의 건설을 둘러싼 피렌체 시민들의 행동은 경이롭다. 도시의 명예를 위해 막대한 사업 자금을 기꺼이 희사하는 직물조합의 활동,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경쟁을 유발시키는 공정한 원칙의 적용…. 공공건물의 건설과정은 시민들의 민주적 의견이 개진되는 장이었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예술가의 획기적인 의견을 존중해 주고 적절한 존경을 표할 줄 알며,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줄 아는 피렌체 시민들의 태도였다.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은 지금까지 지어진 것 중에서 가장 높고 거대한 석조 돔으로 남아 있다. 아이디어가 도용당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두려워한 브루넬레스키가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돔의 비밀을 푸는 것은 후손들의 몫이 되었다.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몰랐던 그가 오랫동안 고대 로마의 건축물을 탐사하고 그 원리를 파악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뿐이다. 저자가 말한 대로 “전란과 암투의 와중에 자연의 법칙도 충분히 모르는 상태에서 인간이 이 거대한 돔을 쌓아 올렸다는 것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경이로울 뿐이다.”
이진숙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