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초 만에 쿠페와 카브리올레, 두 모습으로 완벽하게 변신하는 푸조207CC. 드라마‘가을동화’에 등장했던 강원 고성군의 화진포 해변으로 화진포캐슬(일명 김일성별장) 아래에 있다. 조성하 기자
비키니와 컨버터블(지붕 개폐식 ‘오픈카’).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과시본능, 노출욕구다. 뜨거운 시선을 짐짓 모른 척 태연하게 내숭 떨며 과시하는 매혹적인 비키니 차림. 이게 여성의 꿈이라면 컨버터블은 남성의 그것이다.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태양이 쏟아지는 해변도로를 달리는 자신. 아니 그 차에 쏟아지는 시샘과 부러움의 뜨거운 시선을 즐기며 어느 영화 속 주인공처럼 달려보는 컨버터블 드라이빙.
까딱하면 ‘삼류인생의 치졸한 잘난 척’으로 매도될 위험도 있는 이 폼생폼사의 ‘노출본능’. 그 은밀한 욕구를 커밍아웃할 기회가 찾아 왔다. 푸조 207CC의 한국 상륙이다. 207은 1999년 데뷔한 206의 업그레이드 모델. 그리고 206은 푸조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하드 톱’(캔버스 천에 플라스틱 창을 가진 ‘소프트 톱’ 지붕과 달리 강판에 유리창이 설치된 고체 형의 지붕으로 세 마디로 이뤄진 지붕은 접힌 채로 트렁크에 수납) 컨버터블이다.
내 생애 첫 경험(컨버터블 드라이빙)의 파트너로 프랑스 자동차의 자존심, 푸조를 선택한 이유. 컨버터블의 원조(1934년 최초 개발)이자 그 역사이기 때문이다. 차는 마차에서 진화했다. 그래서 차량 개발의 아이디어는 마차에서 나왔다. 지붕을 접고 펴는 카브리올레(‘컨버터블’은 미국식 표현)도 마찬가지. 카브리올레란 승객을 마부 앞자리에 앉힌 접이식 지붕의 쌍두마차로 19세기 초 런던과 파리에서 주로 택시로 활용됐다. 택시를 뜻하는 ‘캡(cab)’은 여기서 연유됐다.
촬영: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푸조는 접이식 지붕의 차량모델에 반드시 ‘CC’(‘쿠페 카브리올레’의 이니셜)를 붙인다. ‘쿠페’란 문 두 개에 앞좌석만 넓고 뒷좌석은 좁은 밀폐식 지붕의 승용차, 카브리올레는 접이식 지붕의 자동차. 그러니 CC라 함은 ‘쿠페와 카브리올레 두 모습을 두루 갖춘 차’, 즉 양쪽으로 변신하는 차량이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와 혁신적 기술. 그 바탕은 1934년 세계 최초로 카브리올레를 탄생시킨 푸조의 창의력과 기술력이다. 1999년 개발된 세계 최초의 CC가 그 연장선상에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25초. 207CC가 하드톱 쿠페에서 지붕 없는 카브리올레(혹은 거꾸로)로 변신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25초간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푸조 207CC의 퍼포먼스만큼 흥미로운 거리이벤트도 없다. ‘로보트 태권V’의 변신 장면 같은 뛰어난 볼거리다.
촬영: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새벽 4시. 동해안을 향해 출발했다. 진부령 넘어 화진포로 간 뒤 국도7호선의 끝 통일전망대까지 해안도로를 달리는 노정이었다. 국도7호선은 카브리올레 드라이빙에 더 없이 좋을 듯했다. 굳이 화진포를 택한 이유도 같다. 게다가 확장공사로 개선된 국도7호선의 대부분 구간과 달리 화진포 이북 구간만큼은 아직도 25년 전 첫 마이카 포니로 찾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옛 정취를 느낄 만한 것도 한 이유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오픈카 드라이빙에 절대적인 맑은 공기를 찾아서지만.
새벽 출발을 택한 이유 역시 분명했다. 해뜰녘 지붕을 젖힌 채로 상큼한 산 공기를 마시며 진부령을 넘고 싶어서다. 빗방울이 흩날리던 이날 서울의 새벽. 그러나 대간 마루의 진부령은 서해의 비구름을 완벽히 차단했다. 여명에서 벗어나 맑은 하늘을 보이기 시작한 대간 동편의 동해변 고성을 향해 달리던 순간. 카브리올레에 앉아 맞은 아침 해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 됐다.
촬영: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화진포. 세상에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이 우리 곁에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웠다. 뒤로는 백두대간의 장대한 산악, 앞으로는 푸른 동해가 펼쳐진 이 호반. 김일성, 이승만, 이기붕 등 세 역사인물의 별장이 유독 이곳에 있는 것만 봐도 경승지임을 알 수 있다. 포구의 물은 다리를 중심으로 8자 모양이다. 호수처럼 보여도 ‘호’가 아니라 ‘포’다. 같은 석호(해안의 융기로 내륙 쪽에 갇힌 바닷물)라도 경포호, 송지호, 영랑호가 ‘호’인 것과 달리. 이유는 자명하다. 동해와 연결되어서다. 바닷물이 들락거리고 바닷고기가 산다. 아직도 바다의 일부니 만큼 그 이름도 ‘포’다.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바다를 마당처럼 품에 안은 화진포. 그 사이로 솔향기 솔솔 풍기는 송림이 별천지처럼 펼쳐진다. 김일성 이기붕 별장이 여기에 자리 잡았다. 금강산(온정리)이 불과 30km, 설악산 역시 자동차로 30분 거리. 자연경관을 보는 눈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1930년대 서양인 선교사들 역시 화진포로 몰렸다. 이기붕과 김일성 별장이 그 현장. 이 별장은 원래 서양인 선교사의 여름휴가용 별장이었다.
민간인 통제선이 있는 명파리까지는 13km쯤. 대진항 주변과 마차진, 명파의 해안엔 기막히게 아름다운 금빛 모래 해변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철책에 막혀 들어갈 수 없는 현실. 여름 휴가철에만 잠시 개방된다. 특히 마차진의 금강산콘도 앞, 동해안 최북단의 명파 해변은 그 풍광이 제주도 아니 태국을 능가할 정도다. 나는 지붕을 열고 화진포 호반에서 명파리까지 해안도로를 마음껏 달렸다. 눌러쓴 캡 아래 선글라스를 걸치고. 파란색 207CC가 금빛 모래와 푸른 동해를 배경으로 찬란한 햇빛 폭우 속을 질주하는 도발적인 모습. 아마도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도 남았으리라. 나 역시 그랬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온천욕이 그리웠다. 햇빛, 바람, 소리, 그리고 뭇시선까지 감내해야 하는 카브리올레 드라이빙이 보통 차의 그것보다 고단한 탓이려니. 그래서 귀경 루트를 미시령으로 잡고 그 초입의 설악워터피아에 들렀다. 여기에는 일본온천의 노텐부로(노천탕)에 비교적 근사한 노천탕이 있다. 기분 좋게 살랑대는 바람이 노천욕에 덥혀진 몸을 식히는 동안 카브리올레 드라이빙 내내 흥분됐던 몸과 마음은 진정을 되찾았다. 멋진 하루를 되새김하던 중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 ‘까짓 거 사버려? 더 나이 먹기 전에.’ 참고로 푸조 207CC는 3650만 원(부가세 포함)이다.
고성(강원)=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화진포 막국수
막국수를 고성 토박이는 ‘토면(土麵)’이라고 부른다. 쌀밥 대신 메밀막국수를 주식 삼던 시절의 곤궁함이 고스란히 담긴 이름이다. 그 토면은 동치미국물에 말아야 제격. 이북식이다. 식당 ‘화진포막국수’도 그 식 그대로다. 살짝 언 동치미국물을 얼음째로 담아내는데 메밀 100% 국수에 부은 뒤 양념과 열무김치를 얹어 훌훌 말아먹는다. 덤으로 주는 명태식해까지 올리면 더욱 환상. 동치미 메밀막국수(5000원)와 명태식해 비빔막국수(6000원), 명태식해 보쌈(1만 원)이 있다. 거진읍 화포리70, www.hwajinpo.biz 080-682-8182
여행정보
◇찾아가기
▽화진포=서울∼올림픽대로∼팔당대교∼국도6호선∼국도44호선∼홍천∼인제∼국도46호선∼진부령∼간성∼국도7호선∼화진포∼명파리
▽통일전망대=김일성별장(화진포)∼국도7호선(5km)∼신고소∼11km∼전망대
◇관광지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 ①김일성별장, 이기붕별장=해변의 주차장 옆. ②이승만별장=화진포 호반에 위치. 주차장에서 걸어서 10분. △해변=별장 관람료 내고 입장. 주차장에 관광안내소가 있다. △해양박물관=해저터널형 수족관
▽통일전망대=신고소에서 출입 신청 후 입장. 주차료 3000원, 입장료 2000원. 출입신청 후 교육영화(8분)를 관람한다. 전망대에 도착하면 신청서를 제시하고 차량출입증을 받는다. 전망대 관람시간은 3시간 이내. 북한의 해금강과 금강산(구선봉),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해변이 보인다.
▽설악워터피아(www.seorakwaterpia.co.kr)=속초시 미시령 중턱의 한화리조트에 위치. 섭씨 49도의 천연온천수를 이용한 스파, 워터파크, 사우나(노천탕 포함) 종합시설. 온라인 예매 및 제휴카드 할인. 1588-2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