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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학, 건축이야기 20선]세상을 바꾼 건축

입력 | 2007-06-14 03:08:00


죽기 전에 봐야 할 90개의 건축물

21세기 들어 건축은 새로운 종교가 되었다. 좋아하는 꽃과 배우의 이름을 묻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좋아하는 건축물에 대해 질문 받는다. 르코르뷔지에, 렌조 피아노의 이름과 업적을 읊조릴 줄 알아야 유행에 뒤지지 않는 교양인으로 인정받는다. 궁전과 사원, 미술관을 보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길 떠났던 사람들은 돌아와 채 짐을 풀기도 전에 “내가 본 앙코르와트는 말이지” “알람브라 궁전의 저녁 풍경은…” 하고 무용담을 털어 놓는다.

하지만 이런 순례에 동참하는 행운이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떠나고 싶지만 지금 당장 떠날 수 없다면, 혹은 제대로 준비될 때까지 출발을 미뤄야 한다면 우선 이 책으로 허기를 달래보자. 인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90개의 건축물과 그 숨겨진 이야기가 크고 화려한 그림, 짧고 쉬운 글로 되살아난다. 사막 한가운데 피라미드가 세워지는 모습, 고철 덩이라 놀림 받던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이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나는 당연히, 세상의 흐름에 따라 건축이 바뀐다고 생각했었다. 사람들이 신의 구원을 믿으며 열심히 교회를 다니던 시대이니 예배당이 웅장하고 화려하기 마련이고, 위대한 군주는 위엄을 펼치기 위해 성벽을 쌓아 올린다고 말이다. 그런데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얘기를 읽은 뒤 생각이 바뀌었다. 개성도 없고 특별한 산업도 없는 외진 마을이 건축물 하나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단다.

이뿐인가. 세계에서 가장 긴 축조물인 만리장성과 ‘지상으로 내려온 태양’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베르사유 궁전, 킹콩이 매달려 있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이들 건축물이 지어지기 이전과 이후는 같을 수 없다. 이런 건축물을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우리는 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다시 생각한다. 예배당이 웅장하고 화려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구원을 믿었던 것이고 성벽을 쌓아 올렸기에 위대한 군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확실히 건축이 세상을, 인간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크고 두껍고 무거운 책장을 천천히 넘기는 동안,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을 탄생시키려는 인간의 악착스러운 열망 덕에 놀라운 건축물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 전통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모두 그 당시에는 혁명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을 공간의 미학을 탐구하는 건축서라고 단정 짓기에는 뭔가 아쉽다. 인류 문명의 다양성을 그려낸 생생한 역사책이며 떠나는 발길을 재촉하는 여행서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동안 언젠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90가지 신화, 90개의 건축물 덕에 일상의 지루함을 날려버릴 것 같은 여름이다.

김은령 월간 럭셔리 편집장·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