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학년도 대입에서 내신(학교생활기록부 성적) 4등급까지 만점을 주는 방안을 검토했던 서울 지역 주요 사립대들이 교육인적자원부의 강력한 제재 방침에 한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대학들은 고교 간의 큰 학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고교의 학력이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현행 내신제도와 동일 등급이라도 점수 차이가 큰 대학수학능력시험의 9등급제에 의존해서는 신입생을 제대로 선발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 교육부와 재충돌할 수 있는 불씨는 여전하다.
▽‘돈줄’로 대학 목 조르기=교육부는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 일부 사립대가 정시모집에서 내신 4등급 이상에게 모두 만점을 주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13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교육부는 “일부 대학이 내신의 영향력을 무력화하려는 것은 교육 현장의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라며 “대학의 움직임을 모니터링해 재정지원 사업과 연계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대학이 어느 등급까지 만점을 줄지 아직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돼 제재방안을 발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내신의 영향력을 대폭 줄이는 대학에 ‘돈줄’을 끊겠다고 경고했다. 올해 시작되는 인문학육성사업(연간 400억 원)을 비롯해 수도권대학특성화사업(600억 원), 두뇌한국(BK)21사업(2900억 원), 지방대혁신역량강화(NURI)사업(2000억 원) 등에서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다.
올해 대학입시가 끝나면 대학별 내신 실질반영률을 공개하도록 하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대학에는 각종 재정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또 이전에 지원한 사업에 대해서는 중간평가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교육부는 행정 제재도 동원하기로 했다. 교육 관련 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교육정보공개법)이 시행되는 내년부터 각 대학이 11월경 공개해 온 전형 세부 요강을 5월에 발표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대학들 “일단 후퇴”=교육부의 강경한 태도에 대학들은 “내신 등급의 점수에 대해 확정된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이화여대는 “내신 등급 조정에 대해 학교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다”면서 “2008학년도 대입 제도의 취지에 충실하게 내신 성적을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세대는 “내신 1∼4등급에 만점을 주는 것은 지난해 입시안의 내용일 뿐 올해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3등급 이상은 만점 처리를 할 수도 있다고 밝힌 성균관대도 “수험생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4등급 만점의 원인=대학은 일선 고교의 내신 관리가 여전히 부실하기 때문에 내신을 전형의 지표로 삼기에는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또 수능 등급제가 수험생의 실력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제 등급을 환산할 때 점수 역전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는 데 내신 반영률마저 높이면 대학의 독자적인 전형이란 의미가 크게 퇴색된다는 견해이다.
주요 대학들은 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 학생들은 내신이 4등급이라도 일반 고교의 내신 1, 2 등급 학생보다 실력이 더 좋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기 위해서 내신의 실질반영률을 가급적 줄이려 하고 있다.
대학들은 수시모집에서는 내신 성적 위주로 선발하는데 수능의 비중이 큰 정시모집에서 내신의 실질반영률마저 늘리라는 것은 교육부의 지나친 간섭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교육부가 법적으론 대학 입시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입시 문제를 행·재정 지원과 연계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서울 지역 대학의 한 입학처장은 “교육부가 입시 문제와 연계해 대학에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일종의 연좌제”라고 말했다.
대학들은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이 교육 분야 규제 개혁을 주장하고 있어 자율적인 입시 전형이 가능한 환경이 점차 조성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정치 환경 변화에 따라 내신 성적 반영률 등은 크게 달라질 여지가 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