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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정훈]임기 말 검찰총장의 임기

입력 | 2007-06-14 19:22:00


1997년 7월 말경 김기수 당시 검찰총장에게 청남대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여름휴가 중이던 김영삼(YS) 당시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온 것이었다.

한참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YS는 느닷없이 “현철이가 감옥에 가 있는 것 때문에 집사람이 매일같이 울고불고 난리다. 검찰총장 그 사람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짜증을 냈다. 워낙 뜬금없는 화법으로 유명한 YS이긴 하지만 전화통화 도중에 김 총장과 직접 통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었는지 몇 달 전 차남 현철 씨가 한보사건으로 구속된 데 대한 서운한 감정을 쏟아 냈다.

모른 척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김 총장은 기분이 영 찜찜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YS는 법무부 장관을 교체했고 신임 장관에는 김 총장보다 사법시험 기수가 하나 아래이자 서울고검장으로 있던 김종구 씨가 임명됐다. 2년 임기를 40일가량 남겨 놓고 있던 김 총장은 검찰 후배가 장관에 기용되자 ‘관행’에 따라 사퇴했다.

임기가 남아 있는 검찰총장에게 물러나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한꺼번에 갈아 치운 묘수라면 묘수였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지금의 정상명 검찰총장 직전까지 13명의 검찰총수가 나왔으나 정작 2년 임기를 제대로 마친 총장은 5명에 불과하다.

2명은 임기 도중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됐고 2명은 정권과 갈등을 빚으면서 스스로 옷을 벗었다. 3명은 개인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이나 검찰 내에서 터진 피의자 사망 사건 때문에 책임을 지고 자리를 떠났다.

권력과 검찰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임기제 하나 제대로 지키는 것부터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주는 우리 현대사의 기록이다.

정상명 검찰총장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물론 이후 법무무 장관 기용설이 나돌 때마다 재삼재사 “절대로 법무부 장관으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임기는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해 온 것도 이런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다.

문제는 그 다음 검찰총장이다. 정 총장의 임기 만료일이 대선을 코앞에 둔 11월 23일이어서 차기 검찰총수는 현 정권에 이어 다음 정권 때까지 재임하는 ‘두 정권의 검찰총장’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 내에서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과연 차기 검찰총장이 온전히 임기를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벌써부터 일고 있다. 그리고 이를 꼭 노파심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떠나는 권력과 새로운 권력 양쪽에서 모두 찾을 수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으레 검찰을 앞세워 구정권의 비리를 청소하는 일이 반복돼 왔고, 이 때문에 떠나는 정권은 임기 이후의 안전 보장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새 정권 역시 검찰을 장악하려는 충동을 느낄 것이다.

2002년 11월 김대중 정부 임기 말에 검찰총장이 됐다가 정권이 바뀐 2003년 3월 4개월 만에 중도 하차한 김각영 전 검찰총장의 선례도 있다. 그 과정에서 노 대통령과 검찰 모두 큰 상처를 입어야 했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두 정권의 검찰총장이 온전히 임기를 채울 수 있도록 어떻게 인사를 할 것인가는 노 대통령의 임기 말 숙제 중의 하나다.

김정훈 사회부 차장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