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오면서 긴 시간 여행을 한 느낌이었다. 그 넓이 또한 가까운 아시아에서 먼 남미까지 아우르는 여정이었으니 글 길을 따라 움직인 머릿속 행보도 바빴다. 하지만 마음에는 새로운 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지금껏 도시와 건축에 대해 접근하던 나름의 구상들이 많은 부분 허상임을 알게 된 것이다.
‘하늘 아래 도시 땅 위의 건축’은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다. 건축학자가 서술했으니 제목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 놓인 도시와 건축을 전공서적 같은 분위기로 꾸며냈으리라 상상한다면 금방 난감해질 것이다. 어찌 보면 이 책에는 통속적으로 정의된 도시와 건축이 없을 수도 있다. 저자가 현장에서 목격한 것은 지금의 모습이지만 그것은 살아 있는 생물체와 같기에 탄생도 있었고 성장도 있었음을 알려준다. 긴 시간을 이어온 역사에서 짧은 순간 가장 많은 변혁의 사건들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근현대기를 중심으로 도시와 건축의 부침, 그 배경이 책 속에 흐른다. 1권은 아시아로 가는 길, 2권은 서양으로 가는 길로 나뉘어졌다. 33개의 도시를 담은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사진과 도판 그리고 강약과 탄력의 적절한 조절도 숨은 기술이다.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부분은 저자의 발길이 닿은 곳에 남아 있는 선조의 족적을 좇아 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수집한 방대한 분량의 자료와 이를 가능하게 한 저자의 치열하고 집요한 열정이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세계가 요동치던 근현대기에 한반도를 훌쩍 넘어 만주벌판을 달리고 대양을 건넜던 이야기들이 지금도 건재한 이국땅의 도시, 건축의 한 부분에서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를 품을 수 있는 도시와 건축의 힘이라는 것을 이 책은 전하고 싶은 것이다.
역사를 보는 기준점은 다양하다. 그게 어떤 패러다임이 되든지 다 나름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고 보이지는 않지만 잠재된 무한 가능성을 담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남아 있는 건축만큼 실증적으로 역사의 결과를 말해 주는 것이 또 있을까. 우리는 도시 속에서 역사의 켜를 찾아 맥락을 이을 줄 알아야 하고 그 도시를 채우고 있는 건축들로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 미래의 모습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 낼 도시와 건축의 건강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도시와 건축에 대해 좀 더 넓은 시야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해외여행을 하고 온 사람들이 “왜 우리의 도시는 그 모양이고 건축은 왜 그 따위뿐인가”라고 힐책해서는 안 된다. 도시와 건축은 우리가 잉태해서 성장시켜 왔고 우리의 삶과 꿈 또한 그 안에서 자라고 있지 않은가.
박선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