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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joy]세계최고 물잡이들

입력 | 2007-06-15 03:32:00

래프팅은 물 위에서 타는 청룡열차다. 하지만 청룡열차보다 훨씬 더 짜릿하고 재밌다. 마치 미친 듯이 날뛰는 야생마의 등에 올라탄 것 같다. 강원도 인제 내린천에서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 래프팅은 물길을 잘 읽을수록 그 재미가 열배 백배 늘어난다. 인제=신원건 기자


강물에도 길이 있다. 지름길이 있는가 하면 샛길도 있다. 고속도로가 있는가 하면 덜컹덜컹 자갈길이 있다. 물은 결코 다투지 않는다. 바위가 막아서면 부드럽게 그 두툼한 바위허리를 감싸고 흐른다. 절벽이 있으면 주저 없이 온몸을 던진다. 웅덩이가 있으면 그곳을 가득 채운 뒤 다시 길을 떠난다. 강물은 서두르지 않는다. 온몸을 다 내주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아래로 흐른다.

강물의 흐름은 각각 다르다. 바깥은 느리고 가운데는 빠르다. 물 표면보다 그 바로 밑의 물이 더 빠르다. 바람이 자꾸만 물 표면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강이 갑자기 허리를 틀면 이젠 바깥물이 쏜살같이 앞질러 간다. 가운데 물은 멈칫멈칫 속도를 늦춘다. 강물은 바위가 막아선 곳에선 리본처럼 한두 바퀴 꼬이면서 돌아나간다. 어느 곳에선 세탁기 물처럼 빙빙 도는 소용돌이를 만든다. 물은 굽이쳐 흐른다. 강바닥이 갑자기 낮아지는 곳에선 위아래로 굽이치고, 물이 강변에 부딪쳐 가운데로 튕겨 나오면 좌우로 굽이친다.

래프팅은 물길을 타는 스포츠다. 물길은 야생마와 같다. 멋모르고 타다간 큰코다친다. 물길을 알고 타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청룡열차 타는 것보다 훨씬 더 짜릿하다.

요즘 강원도 인제 내린천은 래프팅 세상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래프팅 재미에 빠져 싱글벙글 노를 젓는다. 한 해 래프팅을 하고 가는 사람만 30만 명 정도. 더구나 이곳에선 27일부터 7월 2일까지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제4회 세계래프팅선수권대회가 열린다. 2년마다 열리는 세계선수권은 래프팅의 올림픽이나 같다.

내로라하는 세계 래프팅 선수들이 천방지축 제멋대로 흐르는 내린천의 물길 읽기에 나선다. 6명이 한팀을 이루는데 남자 34개 팀, 여자 12개 팀이 참가 신청을 냈다. 러시아(2001, 2005년 우승) 체코(2003년 우승)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브라질 일본 등이 우승을 다툴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선수권대회는 ①스프린트(300점) ②슬라 롬(300점) ③다운 리버(400점)의 3개 종목 합산 점수가 가장 높은 팀이 우승을 차지한다. 스프린트는 육상 단거리와 같다. 600m의 급류를 누가 가장 빠르게 주파하는가를 겨룬다. 물길 중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 즉 본류(Main Current)를 잽싸게 타는 팀이 유리하다.

슬라 롬은 힘과 기술, 팀워크를 시험하는 종목. 스키의 회전경기처럼 기문(12∼15개)을 설치해 그 사이를 빨리 통과하는 종목이다. 스키와는 달리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강물을 옆으로 가로지르는 경우도 있다. 보트나 사람이 기문에 닿거나 기문을 빼먹으면 감점.

다운 리버는 마라톤이다. 12km의 거리를 누가 빨리 주파하는가를 겨룬다. 지구력과 힘이 좋은 유럽 팀들이 유리하다. 한국 팀은 스프린트를 제외한 두 종목에선 열세.

한국대표팀 주장 이재희(27) 씨는 경력 7년의 베테랑. 그는 지리산 계곡인 경남 산청의 경호강에서 주로 물을 탔다. 그는 “3년쯤 물을 타봐야 비로소 물길을 읽을 수 있다. 바닥이 꺼졌는지, 올라갔는지도 한눈에 보인다. 하면 할수록 재밌고 어려운 게 래프팅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부주장 호성균(26) 씨는 서울 양천구민체육관 수영장 강사 출신. 이번 대회를 위해 지난겨울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다. 그는 “래프팅은 한마디로 팔 허리 하체 등을 고루 쓰는 전신운동이다. 수영장 물은 움직이지 않지만 강물은 펄펄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그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표팀 보트 왼쪽 맨 앞에 타는 대학생 김정태(23) 씨도 밤엔 경기도 구리청소년회관에서 수영강사로 일한다. 한때 래프팅업체 가이드를 하다가 점점 빠져들게 됐다. 그는 “수영이나 래프팅은 순간순간 몸의 균형을 키워 주지만 래프팅은 여기에 팀워크가 추가되는 스포츠”라고 예찬론을 폈다.

강원도 평창에서 감자와 더덕농사를 짓고 있는 8년 경력의 최상순(27) 씨는 만능 스포츠맨. 그의 위치는 보트 왼쪽 가운데인 좌현선복. 스노보드 프로자격증이 있는 그는 겨울엔 스키장 강사로 일한다. 그는 “난 물에만 들어가면 편안하고 아늑해서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기는 것 같다. 물과 내가 하나 되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래프팅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대표팀 보트 오른쪽 가운데가 위치인 강원도 철원 출신의 대학생 최형근(23) 씨는 “올봄 인도네시아에 전지훈련을 가서 정말 많이 배웠다. 프레 대회 때 마치 6명이 한몸처럼 움직이는 일본 선수들을 보고 놀랐다. 한국도 앞으로 저변이 더 넓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래프팅 코스는 동강 내린천 한탄강 경호강 등 4곳이 유명하다. 이 밖에 금강 남한강 섬진강 오대천에서도 래프팅을 즐길 수 있다. 국내 래프팅 인구는 120만 명 선으로 추산된다. 자격증을 가진 가이드만 3000여 명에 이를 정도. 코스는 난이도에 따라 1∼6급으로 분류된다. 폭포가 있는 곳은 6급으로 최난 코스. 국내 강들은 2, 3급 정도로 보통 사람들도 큰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다. 수량이 많아지면 난도가 약간 올라간다. 최석현 한국대표팀 감독은 “내린천 코스는 물이 많을 때 3급+∂ 정도로 난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힘보다는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코스다. 또한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외국 선수들이 원더풀을 외친다”고 설명했다.

▼래프팅 대회는 1팀 6명의 호흡 맞추기… 보트 100만∼500만원▼

래프팅 보트는 왼쪽과 오른쪽에 3명씩 6명이 정원이다. 정면에서 볼 때 왼쪽 맨 앞은 좌현 선수, 가운데는 좌현 선복, 맨 뒤는 좌현 선미로 부른다. 오른쪽도 마찬가지로 우현 선수, 우현 선복, 우현 선미로 부른다. 이 중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배 끝 좌우 선미 두 사람. 이들이 배의 선장 역할을 한다. 급류에서 방향 전환 등이 필요할 때 큰 소리로 전체적인 지휘를 한다. 가운데 두 사람은 체중으로 보트의 중심을 잡으면서 속도 유지 역할을 한다. 맨 앞의 두 사람은 보트의 방향을 급선회하거나 속도를 높이고 줄이는 역을 맡는다.

6명의 능력이 아무리 빼어나도 호흡이 맞지 않으면 보트는 산으로 간다. 소용돌이치는 홀(HOLE)에서 맴돌기 십상이다. 기계처럼 한몸으로 움직여야 상어처럼 자연스럽게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다.

보트의 무게는 40∼80kg. 공기가 들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다. 가격은 한 척에 100만∼500만 원. 패들이라고 부르는 노는 카본으로 만든다. 길이는 선수용이 160cm. 한 개에 2만∼30만 원씩 한다. 노는 내려갈 때 1분에 60회 정도, 거슬러 오를 때는 80회 정도 저어야 한다. 결국 래프팅은 가능한 한 노를 적게 저으면서 빠른 길로 가는 싸움이다. 급류에선 뱃머리를 어떻게 하면 예리하게 들이미느냐의 각도 싸움이기도 하다.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