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는 ‘갈색 폭격기’로 불렸다. 거무튀튀한 용모에 거침없이 때리는 폭발적인 스파이크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낳은 최고의 배구선수로 통했다. 코트를 떠나는 그를 두고 배구인들은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프로배구 스타 신진식(32·삼성화재). 그가 정들었던 코트를 떠나 지도자 수업에 들어갔다. 더 뛰고 싶었지만 후배들을 키워 다시 한 번 코트를 지배하겠다는 마음으로 과감하게 ‘은퇴’를 선언했다.》
“몸도 아직 괜찮고 팬들도 원하고 있어 1년 더 뛰고 싶었어요. 하지만 신치용 감독님을 포함한 구단 관계자들이 말렸어요. 처음엔 마음이 상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잘된 것 같아요.”
경기 용인시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코트를 떠난다는 것을 아직 완전히 받아들인 것 같지는 않았다. 아쉬움이 많은 듯했다. 발목과 무릎을 50여 차례 겹질리고 어깨와 손목 수술을 받는 등 몸이 성한 데가 없지만 아직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후배들이 절 넘으려는 노력을 안 했어요. 그래서 오래 뛰었죠. 우리 구단이 세대교체가 늦었다고 하는데…. 후배들이 치고 올라와야 세대교체가 되는 것 아닌가요?”
그는 후배들이 더 독한 마음을 가지고 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가 되면서 돈과 자신만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요. 팀 성적이 좋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죠. 팀을 위해 뛰어야 합니다.”
신진식은 5년 전부터 신치용 감독에게서 “넌 지도자 하면 잘할 거야”라는 소리를 들었다. 고교 은사인 김은철 익산 남성고 감독도 그랬다. 신 감독은 “(신)진식이는 기본기가 탄탄해 후배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다. 승부욕도 대단하다. 스타플레이어들이 빠지기 쉬운 자기 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지도자 공부를 제대로 하면 아주 훌륭한 감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진식이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후배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지도자’.
스타플레이어가 훌륭한 감독이 되지 못하는 가장 주된 이유가 자기 눈높이에서 지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솔직히 눈높이를 낮추는 게 어려워요. 하지만 해야죠.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요”라며 웃었다.
내년엔 스포츠 과학의 본고장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난다.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영어는 필수다. 그래서 브라질, 일본이 아닌 미국을 선택했다.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 좀이 쑤셔 죽겠어요. 훈련이 훨씬 쉽다는 것을 지금 느껴요. 하지만 해야죠. 스타 선수로만 남으면 좀 억울하잖아요. 스타 감독도 되고 싶어요.”
24년 정든 코트를 떠나 오랜만에 두 아들 현수(11) 현빈(2)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신진식. 그가 ‘코트의 히딩크’로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신진식 주요 경력:
청소년대표(1991∼1995년), 국가대표(1995∼2006년), 삼성화재(1997∼2007년), 1998, 1999, 2001, 2003 배구 슈퍼리그
최우수선수(MVP), 삼성화재 겨울리그 9연패(1997∼2005년)와 겨울리그 최다연승(77연승)의 주역
용인=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