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광일(68) 변호사는 오랜 세월 노무현 변호사와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었다. 인권 변호 현장의 후견자 같은 선배였고, 정치 입문도 도왔다. 그런 김 씨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열 가지 이유’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돌출적인 행동과 무분별한 발언으로 항상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균형 잡힌 정치 감각과 건전한 인격을 갖춘 믿음직한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합니다.’
‘그는 세상 넓은 줄(외교의 냉엄한 현실)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요, 핵장난의 위험(김정일의 무서운 속셈)을 외면하는 철부지 정치인입니다. 국가안보와 외교를 모르는 자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없습니다.’
‘역사적인 국회 청문회에서 전직 대통령인 증인에게 명패를 던져 깽판을 만든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깽판 소리를 자주 하는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 감정의 기복에 따라 언제 무슨 깽판을 벌일지 알 수 없습니다.’
김 씨는 당시 민주당의 노 후보를 사이비 인권운동가, 위장 서민이라고도 했다. 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김 씨의 견해에 공감하는 국민이 늘었을지 몰라도 당시엔 이 글이 잠시 화제에 올랐을 뿐이다. 대조적으로 이회창 후보는 이른바 3대 의혹 폭로에 휘말려 상처투성이가 됐다. 그중 결정적인 것이 아들의 병역 비리를 은폐했다는 주장이다. 이 의혹은 병무 브로커 김대업 씨가 제기하고 민주당 핵심 선거 관계자들과 검찰 일각이 증폭시켰다.
2002년 대선 再版가능성
대선 후 김대업 씨는 무고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사과 한마디라도 한 정치인은 없다. 선거운동 기간에 민주당의 설훈 의원은 이 후보 측근이 최모 씨에게서 20만 달러를 받았다고, 전갑길 의원은 기양건설 비자금 10억 원이 이 후보 부인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이런 폭로 이후 민주당 측은 “왜 크게 보도하지 않느냐”고 집요하게 언론을 압박하기까지 했다. 이 두 가지 의혹도 대선 후에야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
역사는 반복된다던가. 네거티브 선거전의 추억, 흑색선전의 추억, 음해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있다. 12월 19일의 대선을 딱 6개월 앞둔 지금은 한나라당 후보 ‘양자 대결’을 벌일 이명박, 박근혜 씨가 검증 공방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 우선 서로 물귀신 작전을 펴고 있고, 그 틈을 노려 청와대와 여권이 ‘남의 밥상’에 재 뿌리기를 시작했다.
이 씨건, 박 씨건 검증의 지뢰밭을 피해 갈 수 없다. 네거티브 공방은 민주 선거의 한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캠페인은 특히 지지도가 낮은 쪽이 높은 쪽을 공략할 때 유효한 카드다. 쉽게 말해 제 물건이 작을수록, 또는 내세울 물건이 아직 없을 때 남의 물건 흠집 내기가 ‘적절한 방법(proper course)’이 될 수 있다. 이를 실험하듯 먼저 한나라당 안에서 박 씨 측이 이 씨를 선공(先攻)했고 이어 여권이 이, 박 씨에 대해 번갈아 가며 계산된 수순에 따라 단계적으로 의혹을 터뜨리는 양상이다.
물론 네거티브 공세에도 투명성이 요구된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서 정보 수집 과정의 적법성과 상당한 수준의 거증 능력을 보여야 정당하다. 아무리 상대 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이라고 해도 지난날 정보기관의 도청 등 국가범죄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폭로하는 것은 불법적 공작정치를 되살리는 죄악이요, 반(反)민주화다.
유권자들은 네거티브 공방의 이런 양면성을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
6개월 뒤, 국민이 勝者여야 한다
어차피 선거 판은 둥글다고 봐야 한다. 이명박 씨는 최고경영자(CEO) 리더십을 높이 평가받는 대신 네거티브의 제1 표적이 돼 있고, 박근혜 씨는 아버지 박정희 시대의 긍정적 부정적 유산을 동시에 안고 있다. 어느덧 범여권에 내려앉은 손학규 씨는 14년 먹던 우물에 침 뱉은 변절자의 멍에를, 이해찬 씨는 노무현 실정(失政)의 공동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남은 반년은 길다. 유권자들은 대선 무대 위의 별별 꼴을 다 볼 것이다. 그리고 판단해야 한다. 후보의 과거사를 중시할지, 미래가치를 선택할지는 자유다. 2007년 12월 19일 어느 후보가 웃을지도 관심사지만 더 중요한 것은 1년 뒤, 2년 뒤, 그리고 5년 뒤 국민이 웃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자면 유권자야말로 ‘프로’가 돼야 한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