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대학로에 특이한 식당이 문을 열었다.
서울 종로구 명륜4가 ‘솔나무길 된장예술’(02-745-4516)이다.
이곳은 석재로 마감한 외벽과 깔끔한 인테리어로 웬만한 갤러리를 연상시킨다. 아무래도 된장 분위기는 아니다. 그래도 이곳의 주인공은 된장이다. 종로에서 12년간 ‘된장예술’을 운영하며 끈끈하게 숙성된 맛을 지켜온 주인장 박숙희(44) 씨 때문이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도 된장정식이다.
○ 주인장의 말
셋째오빠(시인 박중식 씨)가 인사동에 ‘툇마루’를 내면서 ‘된장 집안’이 됐습니다. 제 손때가 묻은 종로의 ‘된장예술’은 언니가 꾸려 가고 있고, 저는 대학로로 건너왔죠.
비벼먹는 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소한 맛이 살면서도 짜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깡장(강된장)’보다는 묽고 덜 짜죠. 그래서 애초 된장을 담글 때 들어가는 간장의 양을 적게 합니다.
우선 육수를 만드는 데 멸치와 ‘띠포리’(밴댕이의 사투리)를 넣은 뒤 센 불에서 3, 4시간 끓입니다. 띠포리를 쓰면 육수 맛이 훨씬 강해져요. 육수에 된장을 되게 넣은 뒤 두부와 고춧가루를 넣고 끓입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풋고추를 조금 올려 상에 내지요. 된장정식은 비벼 먹기 때문에 두부는 부드러운 것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
정식에는 북엇국과 숭늉에 조기, 장조림, 잡채, 콩나물, 총각김치, 호박무침 등 12가지 반찬이 나옵니다. 인공 조미료 없이 참기름과 들기름, 고춧가루, 마늘, 깨 등 천연 재료만을 사용해 맛을 내고 있습니다.
○ 주인장과 식객의 대화
▽식객=부추와 치커리를 듬뿍 넣고 된장에 비벼먹으니 금세 밥그릇 바닥이 보이네요.
▽주인장=제가 ‘음식예술’을 조금 합니다.(웃음)
▽식=그런데 된장이 묘합니다. 묽기가 깡장과 된장찌개의 중간 정도네요.
▽주=맛도 깡장보다 순하고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식=솔직히 반찬이 너무 많습니다.
▽주=한국음식으로 백반 장사를 하면 손은 많이 가지만 남는 게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서 (손님을) 드시게 해야 속이 시원합니다. 대신 반찬의 양은 적게 하고, 말하면 계속 갖다 드립니다.
▽식=한식은 기교가 아니라 정성으로 맛을 낸다고 하죠.
▽주=저는 음식을 서울 토박이인 시어머니에게 배웠습니다. 몇 년 전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버리는 음식이 없었어요. 조금 상한 음식은 말려도 그냥 드셨지요. 이 정도는 탈이 나지 않는다면서. 음식의 소중함이 몸에 밴 거죠. 시간이 갈수록 고개를 끄덕거리게 됩니다.
▽식=예술이라는 이름이 무섭지는 않습니까.
▽주=무섭죠. 하지만 노력하면 음식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음식이란 것이 참 묘해요. 즐거운 마음이 담긴 음식은 맛도 좋습니다. 돈 벌려고 겉만 번드르르하게 만든 것은 금세 맛이 달아나요. 죽을 때까지 음식에 매달려 정말 ‘예술’ 한번 하고 싶습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