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사정 없는 ‘쩐의 세계’ 냉혹하게 묘사
만화 원작의 TV드라마 ‘쩐의 전쟁’이 인기다. 연출과 연기도 한몫 했겠지만 신용불량자 500만 명 시대에 사채라는 소재를 극화해 낸 원작의 힘이 크다. 그 덕분에 원작 만화가 박인권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도 활발하고 만화 열독자나 탐독하던 사채 소재 만화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마나베 쇼헤이의 ‘사채꾼 우시지마’(사진)는 일본식 사채 소재 만화의 최근형이다. 일본 만화 ‘돈의 제왕’, ‘은과 금’, ‘100억의 사나이’ 등이 엽기코믹, 스릴러, 에로틱 멜로의 수법으로 돈과 인간관계에 얽힌 드라마를 그렸다면 이 작품은 하드보일드다. 피 튀기는 액션을 쉼 없이 반복하는 시각적 표현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불필요한 수식과 장치를 배제하고 냉혹한 사채꾼의 일상을 재연하는 서사적 표현 방식이 그렇다.
이 만화는 쩐의 전쟁처럼 사채업자의 일상을 그렸다. 5만 엔 빌려주고 선이자 1만5000엔에 수수료 5000엔을 뗀다. 1일 이자가 1만5000엔, 2일이면 원금회수, 받을 돈은 그대로 5만 엔이다. 터무니없는 이자 계산법과 받을 수 있는 돈만 빌려준다는 사채꾼의 원칙. 작품은 주인공이 원칙을 유지관리하면서 밑바닥 인생들에게 어떻게 돈을 받아내는지를 지독하리만큼 섬세하게 묘사해 간다.
사채꾼 우시지마에게 고객 또는 노예라고 불리는 사람은 다중채무, 과중채무의 위협 앞에 내몰린 신용불량자들이다. 급전이 필요한 이에게 갚을 수 있는 만큼의 돈만 빌려준다는 원칙은 매우 인간적인 금융모델로 보인다. 그러나 사채꾼은 채무자가 상상도 못했던 인간 이하의 방법으로 돈을 버는 법과 갚는 법을 알려준다.
한국적 방식이라면 땡전 한 푼 손에 넣을 수 없는 채무자에게 돈을 버는 색다른 방식을 제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드라마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가의 서술법은 냉정하다 못해 잔혹하다. 신용가치 제로의 인간을 교환가치 제로의 인간이 될 때까지 부린다. 구걸, 매춘, 강도, 보험사기 등등 가혹하고 비정한 착취가 이어진다. 허영심에 빠진 명품족 여성, 천재라고 생각하는 은둔형 외톨이, 깡 하나로 폼 나는 인생을 계획하는 양아치, 잔머리로 손쉽게 돈을 버는 직장인 등이 우시지마의 노예가 된다.
우시지마의 노예는 돈 앞에서 급해진다. 그 돈이 없으면 큰일 날 것 같고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돈이 있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시지마는 알고 있지만 노예는 모르는 사실이다. 애초에 문제는 채무자의 탐욕과 허영심이라고 알려줘도 노예들은 돈이 없어서 문제라고 답한다. 돈이 아니라 돈의 노예가 문제인 것이다.
박석환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