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내 마음속의 별]화가 지석철의 프로골퍼 최경주 찬가

입력 | 2007-06-23 03:01:00


‘섬소년의 바다’를 품고 사는가… 도무지 도전의 끝이 없다

예전에 몇 차례 필드에 나간 적은 있지만 근래에는 골프를 치지 않는다. 치지 않는다기보다 치지 못한다. 정교하고 세밀한 극사실주의 작업을 하는 내 그림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학교 강의까지 겹쳐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업실에서 작품과 씨름하다 보면 푸른 자연 속에서 ‘탕’ 하고 날아가는 하얀 공의 포물선을 보고 싶지만 그 대신 TV에서 중계하는 골프 경기로 만족한다.

골프는 내 그림과도 유사한 점이 많다. 골프는 힘과 정교함을 동시에 갖추면서도 자신과의 싸움을 치러야 하는 경기다. 내 작업도 그렇다. 색연필 등으로 정교하고 세밀하게 사물을 그리다 보면 힘은 물론 그림을 대하는 나 자신의 철학도 거듭 다져 나가야 한다.

좋아하는 골프 선수는 많다. 박세리, 김미현, 안시현, 타이거 우즈, 비제이 싱 등. 그중에서도 최경주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 그가 세계 대회에서 6차례 우승했다는 점도 남달라 보이지만 정상의 위치에 오를 때까지 그만의 불굴의 의지가 내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다.

최 선수가 뇌리에 각인된 것은 ‘2002년 컴팩클래식’에서 우승한 직후였다. 한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우승하기까지 최 선수의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생활을 소개했는데 그는 “이제부터 더 중요하다”고 겸손해했다.

불과 2년 전 미국에서 데뷔한 선수가 쟁쟁한 세계적인 선수들을 물리치고 우승하고 세계적인 스타가 됐는데도 그는 오로지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스폰서가 없어 중고 승합차를 숙소 삼아 넓은 미국 땅을 누비는 힘든 시간을 극복하고 우승한 그가 곧장 자기와의 싸움을 다시 거는 것을 보고 저절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던 기억이 난다.

나는 선천적인 재주보다 뚝심을 가지고 스스로 몰두하는 이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미술계가 최근 활기를 띠고 있고 젊은 작가들에게 적지 않은 기회가 주어지다 보니 쉽게 이름을 얻으려는 이들도 눈에 띈다. 그런 후배나 제자들에게 조언을 하면서 늘 예를 드는 이가 최 선수다.

최 선수는 어쩌면 우즈 같은 천재적 골퍼는 아닐지 모르지만 우직할 정도로 자신을 담금질해 성과를 얻어 낸 사람이라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제자를 배출했지만 교수가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그림을 가르칠 순 없다. 그림의 본령 방법 철학 등을 지도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그 나머지는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

최 선수의 진정한 모습을 우연히 본 이후 나는 “대선수가 될 것이다”라고 주위에 이야기하고 다녔다. 마치 내 가족이 그런 과정을 거쳐 위대한 선수가 된 것처럼.

예술가든 스포츠맨이든 사람들은 현재의 위치와 결과를 먼저 본다. 나도 30여 년을 작업해 왔지만 이 ‘작은 이름’도 하루 이틀에 얻을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수없는 좌절과 절망, 고통의 반복을 견뎌야 했고 새로운 소재와 주제에 대한 탐구로 날을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것은 계속되고 있다.

최 선수도 그럴 것이다. 화가가 전체 화면을 읽고 작업의 방향을 이끌어 가는 것처럼 최 선수도 부단한 체력 관리와 정교한 샷을 다듬어 가며 필드를 읽고 공의 낙하지점을 조율해야 할 것이다.

1970년생인 최 선수는 나보다 17년 어리지만 골프 경력은 20여 년에 이른다. 그 긴 세월을 뼈를 깎는 각고 속에 보냈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 예술 작업의 동반자’라는 생각도 든다.

최 선수는 국내에서 필드의 타이슨, 미국에서는 블랙탱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두 가지 모두 우직할 정도로 거칠 것 없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어지간한 포격을 맞아도 끄덕없는 탱크, 끝없이 전진밖에 모르는 탱크, 상대의 잔매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돌적인 한 방으로 상대를 침몰시키는 복서 타이슨, 이 같은 별명처럼 그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면에서는 세계 제일의 골퍼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최 선수는 “늘 나는 비어 있는 잔이고, 그래서 그 잔을 채워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작가의 처지에서 본다면 결코 책무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어려운 우승을 하고서도 “우승은 오늘의 일이고 내일은 또 도전해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인생이라는 미답의 경기에 도전을 해야 한다. 도전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최 선수가 “(미국에서 열리는) 마스터스 대회의 개막식 전날 만찬 메뉴를 전년도 우승자가 정해 참가 선수들에게 먹도록 하는데 나는 이 대회에서 우승해 세계 선수들에게 된장찌개를 먹이고 싶은 게 꿈”이라고 말하는 것을 봤다.

최 선수가 나를 가슴 뭉클하게 하는 점이 이것이다. 세계무대에 섰을지언정 자신의 고향에 대한 긍지를 잃지 않는 점. 그렇기에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늘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그 꿈은 이뤄질 것 같다.

지석철 화가·홍익대 미대 교수

“우승은 오늘의 일이고 내일은 또 도전해야 한다”니… 자신과의 싸움 멈출줄 모르는 참 강한 ‘탱크’ 아닌가

■ “작은 의자, 이제는 작은 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