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4cm에 61kg.
20대 남성의 키와 몸무게가 이 정도라면? 요즘 같아서는 큰 체격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1979년에는 한국 20대 남성의 ‘평균’이었다.
근거는 1980년 6월 26일 공업진흥청이 발표한 ‘국민 표준 체위(體位) 조사’. 한국인의 신체 평균이 처음 밝혀진 날이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
‘이번 조사는 2억 원의 예산을 들여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서울대학교 가정대학 조사요원들이 작년 11월부터 6개월간 전국 1만8013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머리부터 발끝, 발가락 간격 등에 이르기까지 신체 117개 부위를 일일이 계측, 종합한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의 신체 사이즈를 조사한 것은 ‘표준’에 대한 기업과 소비자의 갈망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표준’이 없어서 생기는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기성복이라고 하더라도 사이즈가 ‘주먹구구’였다. 구두도 길이에만 신경을 썼을 뿐 높이나 너비는 감안하지 않아 티눈으로 고생하는 소비자가 많았다. 성장기를 감안하지 않고 만든 책걸상은 오히려 신체 발육의 걸림돌이 됐다.
그래서 조사결과는 통계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기성품 시대를 여는 촉진제’라는 평가를 받았다. 조사 결과는 패션과 제화뿐 아니라 가구, 자동차, 전기전자, 주택, 유아용품 등 인체공학적 디자인이 필요한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요긴한 자료로 활용됐다.
이후 같은 조사를 4차례 더 했다. 가장 최근 조사는 2004년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이 실시한 ‘사이즈 코리아(Size Korea)’.
이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평균 체격은 173.2cm에 69.8kg. 25년 만에 키는 5.8cm 커지고, 몸무게는 8.8kg 늘었다. 20대 남성뿐만이 아니다. 전 연령층에서 남녀 모두의 체격이 커졌다.
그렇다고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비만도 판정 기준인 체질량지수(BMI)는 물질적 풍요의 부작용도 보여 준다. 첫 조사 때만 해도 ‘정상’ 등급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중도비만’ 또는 ‘과체중’ 등급자가 늘어났다. 특히 30대 이후 연령층이 뚱뚱해졌다. 만병의 근원이라는 비만이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라는 우울한 증거다.
몰랐던 것을 아는 것은 기쁨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불편한 진실’까지 알아야 할 때도 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