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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규제 ‘양’만 잡고 ‘질’은 놓쳤다

입력 | 2007-06-27 03:01:00


A금융회사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지점에선 지난달 48건의 신용대출이 집행됐다.

연체 이력이 있어 종전에는 대출이 쉽지 않던 사람도 심사를 쉽게 통과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 지점에서 여신업무를 하는 박모(40) 차장은 “신용도가 다소 낮은 사람들이 대출 신청을 많이 하는데, 신용등급 최저 기준만 넘으면 승인해 주는 편”이라고 전했다.

올해 들어 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의 신용도가 지난해 말보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 당국이 작년 말부터 대출 총량을 줄이는 규제를 해 대출 수요를 줄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출의 질(質)인 신용도 관리는 미흡했던 셈이다.

○ 대출자 평균 신용 4등급에 근접

본보가 26일 입수한 한국신용정보(한신정)의 ‘신규 대출동향 시(時)계열 분석결과’에 따르면 올해 3월 신규로 신용대출, 부동산 담보대출, 카드대출을 받은 사람의 평균 신용도는 3.88등급이었다. 이는 지난해 12월 신규 대출자의 평균 등급보다 0.23등급 나빠진 것이다.

한신정 신용등급은 1∼10등급으로, 등급 숫자가 커질수록 신용도는 떨어진다.

대출 유형별로 신용대출자의 신용도는 작년 말 3.70등급에서 올 3월 3.84등급으로 0.14등급만큼 신용도가 악화됐다. 담보대출자의 신용도는 0.30등급 나빠졌다.

카드대출자의 신용도는 작년 12월에 비해 다소 개선된 듯 보이지만 올해 들어 줄곧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대출자의 신용도가 낮아진 반면 올해 초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 등 각종 대출규제책이 도입되면서 신규 대출 규모는 크게 줄었다.

한신정이 지수(指數)로 표시한 신규 대출규모는 작년 말 1421.74에서 올 3월 963.22로 32.3% 감소했다.

○ 대출 경쟁이 원인

최근 금융회사들이 대출 심사 때 신용등급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아 신용도가 하락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출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대출이 가능한 고객을 놓치지 않으려는 경쟁 때문이다.

금융회사는 보통 자체 신용등급 평가 결과가 ‘적격’이고, 외부 신용평가회사의 평가 결과가 ‘부적격’으로 나오면 정밀심사 절차를 거친다. 최근 자체와 외부 평가가 엇갈려도 대출이 승인되는 사례가 과거보다 많아지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대출을 많이 받고 있다.

신용도가 나쁜 사람 위주로 대출창구에 몰리면서 신용도가 전반적으로 악화됐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올해 들어 신규 대출자 가운데 신용등급이 우수한 1∼3등급 고객 비중이 줄어든 반면 신용도가 나쁜 8∼10등급 고객 비중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금융회사 심사기준 강화해야”

금융권 일각에서는 “대출자의 신용도 하락으로 대출자산의 부실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 것으로, 철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감독당국은 대출자들의 신용도 하락이 당장 금융 리스크로 연결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윤진섭 금융감독원 신용정보실장은 “은행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기준이 다른 만큼 평균 신용등급 하락을 위기의 징후로 보긴 어렵다”며 “연체나 부도비율 등을 감안할 때 리스크가 큰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 연구위원은 “현재 대출수요 중에는 신용도가 낮은 사람이 많이 포함돼 있는 만큼 금융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신용평가를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