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회에 국민연금법 등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한나라당이 자신의 국회 연설을 거부하고 민생관련 법안의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오전 대국민담화에서 국민연금법 등 민생 개혁법안을 조속히 처리하기 위한 7월 임시국회 소집을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한나라당을 겨냥해 “민생 개혁법안의 발목을 잡는 것은 국민의 이익보다 정략을 앞세우는 당리당략의 정치”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언제부터 민생을 챙겼느냐. 적반하장이다”라고 반발하며 7월 임시국회 소집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민생법안 처리 지연은 무책임한 일”=이날 15분간 TV로 생중계된 노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6월 임시국회 기간(시한은 7월 3일)에 자신의 국회 연설이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직접 국민을 상대로 주요 법안 처리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구체적인 법안의 처리 지연 실태를 일일이 거론하며 그 책임을 한나라당에 넘겼다. 그는 “한나라당이 민생을 정략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거듭 말해 놓고 이처럼 중요한 민생법안 처리를 미루고 있는 것은 참으로 모순된 행동”이라며 “이 정도면 도를 넘은 것이다. 정치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에 대한 이중 잣대?=노 대통령은 또 자신이 제안한 6월 임시국회 중 연설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헌법이 무시되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국회의 허가 사항이 아니라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국회가 헌법을 존중하지 않고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가로막는 현실을 접하면서 민주주의 장래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차례 헌법 비하 발언을 해온 노 대통령이 이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2일 참여정부평가포럼 특강에서 “그놈의 헌법”이라고 헌법을 정면으로 비난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비난한 것도 헌법 경시와 무관치 않다. 노 대통령은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 이론을 들어 행정수도이전 위헌 결정을 내리자 “(관습헌법은) 처음 듣는 이론이다”라고 했다.
선관위가 자신의 정치성 발언에 대해 7, 18일 잇달아 선거법 위반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선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을 막는) 선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위선적 제도로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국회가 통법부(通法府)냐”=노 대통령은 “더 큰 문제는 국민연금법과 로스쿨법이 사학법의 볼모로 잡혀 있다는 점”이라며 한나라당의 사학법 연계 전략을 문제 삼았다.
이에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국민연금법(부결)은 열린우리당과 탈당한 분들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그분들이나 설득하라”고 반박했다.
한나라당은 또 “충분한 심의가 필요하고 정치적 논란이 많은 법안을 무조건 (시급히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이라고 할 수 있느냐. 국회가 통법부냐”라고 반발했다.
노 대통령이 서민 주거복지를 위한 임대주택법 처리를 요구한 것에 대해선 “비축용으로 짓는 5만 호 중 4만 호를 서울에 짓는 게 적정한지에 대해 건설교통부가 먼저 대답하라”고 맞받아쳤다. 한나라당은 ‘식품안전처’ 신설이 핵심인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선 “임기가 8개월 남았는데 무슨 9개 부처를 뜯어고친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또 방송통신위원회 설립법에 대해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밥그릇 싸움으로 몇 년을 끌어 늦어진 것이다. 오히려 한나라당의 문제 제기로 특위까지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공직부패수사처 설치법에 대해선 “대통령 친인척 수사를 대통령 직속기구가 하도록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