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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젊은 여심 사로잡다…퀴어 뮤지컬 ‘쓰릴미’

입력 | 2007-06-29 03:01:00

동성애, 유괴, 살인 등 어두운 내용의 퀴어 뮤지컬 ‘쓰릴미’가 마니아 팬들의 지지에 힘입어 흥행했다. 화려한 의상과 춤은 없지만 특이한 소재가 성공의 비결로 꼽힌다. 사진 제공 뮤지컬헤븐


22일 뮤지컬 ‘쓰릴미’가 공연된 서울 종로구 이화동 대학로예술마당은 20, 30대 젊은 여성들로 가득했다. 화려한 춤이나 의상도 없이 남자배우 두 명만 등장하는 ‘썰렁한’ 뮤지컬이지만, 막이 내리자 관객들은 아이돌 가수 팬클럽처럼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쓰릴미는 1924년 미국에서 일어난 아동유괴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두 남성 동성애자 커플은 왜곡된 사랑과 자극만 좇다가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다. 공연이 오르기 전, 볼거리가 별로 없고 어두운 이 ‘퀴어 뮤지컬’의 흥행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쓰릴미는 한 달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평균 70%의 예매율을 기록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7월 22일까지 계속되는 이 공연을 30번 이상 본 관객도 여럿이다.

이 공연만 35번을 봤다는 서은정(29·여·회사원) 씨는 “무대장치나 의상 등 볼거리가 별로 없기에 오히려 배우의 심리묘사와 세밀한 표정변화에 몰입하게 된다”며 “외모와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 각자의 개성과 매력도 질리지 않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33번 관람한 박지희(26·여·회사원) 씨는 “쓰릴미는 매번 사건의 전개과정과 결말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쓰릴미 마니아 팬들의 ‘작품 사랑’은 보고 감상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극중 주인공들의 노래를 녹음하고 재킷까지 직접 디자인해 실제 음반처럼 꾸민 것을 배우들에게 선물했다. 이 작품은 한국어 OST음반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작품에 나오는 음악을 휴대전화 벨소리로 만들거나 동호회의 인터넷 웹진에 다양한 손수제작물(UCC)을 게재하기도 한다. 일부 팬들은 쓰릴미의 실화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수집한 자료로 극장 휴게실을 꾸미기도 했다.

청강문화산업대 이유리(뮤지컬과) 교수는 “‘헤드윅’처럼 대중적 인기보다 소수의 마니아 팬을 겨냥한 것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뮤지컬평론가인 순천향대 원종원(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실험적 소재와 연출로 마니아를 양산해 반복해서 관람하는 관객층을 다진 것이 성공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