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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이유종]술먹으면 개? 비틀대는 복지부 절주광고

입력 | 2007-06-29 03:01:00


술집에서 여성들이 휴대전화를 든 돼지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돼지들은 ‘작업’ 기회를 엿보지만 여성들은 눈길도 안 준다. 한 돼지가 화장실로 가 자동판매기에서 콘돔을 빼낸다. 순간 돼지가 핸섬한 20대 청년으로 바뀐다. 급기야 갈색 머리 여성이 매혹적인 웃음을 날리는데….

미국 방송계에서 논란이 된 콘돔 공익광고 ‘휴대전화를 든 돼지’의 내용이다. 18일부터 공중파 방송인 ABC와 NBC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지만 CBS와 폭스는 거부했다. 남자를 지나치게 비하하고 성적인 내용을 노골적으로 다뤘다는 것. 공감대를 잃는 내용 때문에 오히려 공익광고의 메시지가 훼손된 것이다.

비슷한 사건이 국내에서도 일어났다. 보건복지부가 28일부터 방영하려고 했던 2차 절주 캠페인 광고 ‘오늘은 멈추고 행복을 선택합니다’이다. 광고는 회사 회식 자리에서 술잔이 계속 돌던 중 직원들 얼굴이 잇달아 개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주인공이 잔을 거꾸로 뒤집은 뒤 술자리를 빠져나와 귀가하면서 아이에게 줄 곰 인형을 사 들고 간다는 내용이다.

제작사는 “취하면 평소 볼 수 없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많은 점에 착안한 것”이라며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술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복지부 안팎의 반응은 음주자들에 대한 비하가 심하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절주 광고 논란은 이번이 두 번째다. 11일부터 공중파를 탄 1차 광고에서는 국내 업체가 해외에 지은 건물을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광고 내용은 삼성물산이 두바이에 짓고 있는 초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와 유사한 모양의 빌딩이 폭발로 무너지면서 ‘음주 피해액 연간 20조990억 원, 얼마나 더 비우시겠습니까’라는 경고가 나온다. 방영 이후 삼성 측의 항의로 건물 윗부분을 일부 수정했다.

국내 상업광고는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서 광고 내용을 규제하지만 공익광고는 심의기구가 따로 없다. 광고를 발주한 부서와 홍보부서 담당자들이 광고를 살펴본 뒤 방송국에 넘길 뿐이다.

때론 국정홍보처에 자문하기도 하지만 상담 수준이다. 광고 전문가들은 공익광고도 내용을 검증할 관련 위원회나 심의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번 일은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예의를 갖추지 않을 때는 오히려 의도 자체가 훼손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생활 속의 작은 예다.

이유종 교육생활부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