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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별]김우림의 ‘크로스오버’국악인 강은일 예찬

입력 | 2007-06-30 03:00:00

김우림 관장


해금 연주자 강은일이 이끌고 있는 해금플러스. 이름부터가 해금에다 무언가를 덧붙이겠다는 의미다. 그녀의 연주 활동을 살펴보면 이름에 담긴 뜻을 곧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전통음악 위에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의 접목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크로스오버 음악을 우리의 전통 악기인 해금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연주자다.

강은일이 협연한 연주자는 보비 맥퍼린, 요시다 형제, NHK 체임버오케스트라, 루치아노 파바로티, 살타첼로, 유키 구라모토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물론 장르도 그렇다.

살타첼로는 1995년 결성된 독일 출신 5인조 클래시컬 재즈 앙상블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클래식 재즈를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국악과도 만나게 됐다. 그들은 재즈에 ‘옹헤야’를 장단으로 하는 곡을 만들어 독일인에게 옹헤야 추임새를 가르쳐 주고 함께 즐긴다.

맥퍼린은 ‘Don't Worry, Be Happy’를 부른 재즈 가수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는 바흐의 영향을 받은 재즈를 바탕으로 자신의 목소리로만 악기 소리를 내는 ‘보이스 보컬’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팝 아티스트다. 이들의 노력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전통 위에서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데 모아진다. 이것이 크로스오버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궁극적 목표일 것이다.

살타첼로가 우리의 장단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협연은 강은일과 살타첼로, 그리고 관중이 하나가 되는 삼합(三合)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홍어, 돼지고기, 묵은 김치가 삼합을 이루어 절묘한 맛을 내듯이 말이다.

맥퍼린과 보이스 보컬 협연은 더욱 심상치 않았다. 강은일은 한번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해금이 낼 수 있는 각종 음색을 빠르게 이어 갔다. 순간 당황하는 맥퍼린의 모습을 눈치 챘는지 강은일은 바로 편안한 리듬과 낮은 음색의 연주를 했고 그제야 맥퍼린의 목소리가 해금 소리 위에 덮여 갔다. 그래도 협연이라기보다 맥퍼린이 해금을 따라 하는 느낌이 강하자 강은일은 이내 도망가듯 다른 방향으로 달음질쳐 갔다. 그래도 열심히 쫓아가는 맥퍼린의 안간힘으로 그들의 공연은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나는 강은일에게 물어보았다. 수많은 협연을 통해 무엇을 얻었느냐고. 대답은 이러했다. “이질적인 악기와의 협연을 통해 조화를 찾기 위해선 해금을 연주하는 새로운 주법(활대법)과 리듬을 찾아야만 했고 해금이 가지는 음량과 음색의 한계까지 극복해야 했다”고. 또한 “상대방의 음악을 더욱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고.

강은일은 서로 다른 민족의 이질적인 악기들의 독특한 소리를 해금을 통해 조화시킴으로써 ‘동서의 화합과 세계의 조화’라는 메시지를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뛰어난 창작욕과 실험정신으로 국악, 클래식, 재즈, 프리뮤직 등 여러 장르의 음악과 인접 예술과의 접목을 통해 해금의 연주 가능 영역 및 지평을 확대해 온 것이다.

그녀의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2005년 여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한국국제교류재단 주최 외국인을 위한 음악회에서였다. 대학 시절 국악동아리 활동을 했기 때문에 국악을 좋아하고 자주 접하기는 했으나 그날의 신선한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그 후로 공연이 있으면 아낌없이 표를 사서 그녀의 해금 연주에 빠져들었다. 아울러 연주 뒤풀이와 우연찮은 만남이 연속되어 그녀의 내면적 고민까지 들을 수 있었다. 앞서 말한 협연 이야기도 그녀를 만난 이후에 녹화방송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강은일은 어렸을 때 피터팬을 본 뒤 재밌고 열정적인 삶을 꿈꿔 왔다. 그러다 바이올리니스트인 기돈 크레머의 연주를 듣고 음악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힘을 느꼈다고 한다.

강은일은 86학번으로 386세대의 중간내기이다. 그녀는 1980년대를 분노의 시기라고 말한다. 강은일이 선택한 국악, 그리고 가장 애절한 소리를 가졌다는 해금으로 표현하고 싶은 음악은 놀랍게도 희망과 미래다. 그러면서도 기쁜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점점 닫혀 가고 있지는 않은가 고민한다고 했다.

언뜻 모순투성이인 그녀의 삶과 바람은 열정을 다 쏟는 그녀의 활대질 속에서 더욱 극명해진다. 지그시 감은 눈, 무아지경의 활대질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는 분명 내가 이전에 알고 있던 해금 소리가 아니다.

강은일은 분명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 그 새로운 음악을 그녀는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통은 진화해야 한다고 그녀는 믿고 있다. 난 박물관인으로서 전통을 계승하는 사람도 존경하지만 강은일 같은 사람도 좋아한다. 이 두 가치는 우리의 희망이고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강은일의 활대질이 더욱 진화하기를 갈망한다. 내 마음속 별이 일등성이 되어 더욱 빛나기를 바라면서….김 우 림 서울역사박물관장·고고학

■‘오래된미래’를찾아서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무동(舞童)’ 무동에는 무언가를 열심히 연주하는 한 악사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가 연주하는 악기가 해금이다. 경쾌하면서도 해학적인, 그러면서도 때로 절절한 음색의 악기. 깽깽이, 앵금, 깡깡이라고도 불리는 해금은 궁중음악부터 거지들의 구걸음악에까지 매우 다양하게 쓰였던 우리네 전통 악기다.

해금은 박물관과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김우림 서울역사박물관장의 별은 단연 해금 연주자 강은일 씨였다.

비가 내리던 21일 오후, 김 관장과 강 씨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만났다. 강 씨의 음반 ‘오래된 미래’를 들으며 그들의 인연과 해금의 매력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예리하면서도 애잔한 해금 소리가 박물관이라는 공간, 여름의 빗소리와 절묘하게 어울렸다. 김 관장은 “강 씨의 해금 연주를 처음 들은 건 2001년경”이라고 했다. 명색이 대학시절 국악동아리 출신인 데다 박물관 맨인 김 관장이었지만 “아, 이런 해금 연주도 있구나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2005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강 씨의 해금 연주를 듣고 그는 강 씨의 본격적인 팬이 됐다.

이제는 팬을 넘어 강 씨 음악에 대한 조언자 역할까지 하고 있다. 김 관장은 해금 연주자로서 더 폭넓은 감성을 위해 다양한 경험을 권유한다. “크로스오버가 그렇듯 나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선 박물관 전시도 많이 보고 역사 분야에도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박물관장다운 조언이었다. 그러자 강 씨는 “이 많은 유물을 언제 다 보나”라고 약간 엄살을 부렸다. 하지만 그건 엄살이 아니라 의욕으로 느껴졌다.

다른 현악기와 달리 해금의 활대는 두 줄 사이에 끼여 있다. 두 줄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 자유를 갈망하는 듯한 절절함이 배어 있는 것 같다. 그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들었던 강 씨의 해금 소리도 그랬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