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9일 임시국무회의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 결과를 반영한 협정문을 심의 의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왼쪽)와 김용덕 대통령경제보좌관이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경제 기자
美요구 대부분 수용하면서 실속도 챙겨
복제약 판매 협정발효 후 18개월간 허용
정부, 9월 국회 비준동의 요청… 美는 연내 법안 의회제출
29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에서 한국은 미국 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미국이 제안한 내용이 실질적으로 (전체 협상의 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아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주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다. 추가협상을 조기에 타결함으로써 자동차나 쌀,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미국 내 강경파의 요구를 차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미국 측 시한에 얽매여 ‘번개 협상’
미국이 추가협상을 제안한 것은 5월 11일. 진보적 색채의 미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노동과 환경 분야를 강화한 ‘신(新)통상정책’을 협정문에 반영하자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달 16일에야 수정된 협정문을 한국에 보냈고 양국은 서울(21, 22일)과 미국 워싱턴(25, 26일)에서 추가협상을 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워싱턴에서 FTA 서명식이 열리는 30일(현지 시간)은 미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무역촉진권한(TPA)이 끝나는 날이기 때문.
30일을 넘기면 미 의회가 협상의 전면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점이 한국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 개성공단 문제 등 신통상정책에 포함되지 않은 문제들까지 거론될 가능성이 있어 득이 될 게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겉으론 “서명식 후에도 추가협상을 할 수 있다”는 느긋한 태도였지만 실제로는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 역시 TPA 기한이 끝난 뒤 협상을 계속하는 초유(初有)의 사태가 빚어지지 않을까 부담스러웠다.
양국은 긴박감 속에 전화로 밤샘 협상을 계속했고 결국 29일 오전 6시 반 합의를 이끌어 냈다.
○ 추가협상의 손익계산서
양국은 추가협상에서 노동과 환경 분야에서 국제노동기구(ILO) 선언에 나타난 5개 권리와 7개 다자간(多者間) 환경협약의 의무 이행을 국내 법령(또는 관행)으로 채택하기로 했다.
노동, 환경 분야 협정을 위반하면 상대국의 관세 특혜를 중단하는 무역보복을 하거나 피해금액에 상응하는 보상금을 물리는 ‘일반 분쟁해결절차’에 따르기로 했지만 한국 측의 요구로 요건은 더 까다로워졌다.
한국은 또 한미 FTA 타결로 의약품 분야 피해가 클 것을 감안해 국내 제약사가 특허를 위반해 복제약을 판매해도 협정 발효 이후 1년 반 동안은 문제 삼지 않기로 한다는 요구를 관철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이르면 30일 한국을 비자 면제 대상국으로 하는 법 개정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기로 한 것도 성과다.
일각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전문직 비자 쿼터 확보를 요구했지만 얻어내지 못했고, 특허에 위반하는 복제약 판매 시한도 미국이 최근 FTA 추가협상을 벌인 페루 파나마 콜롬비아에 대해서는 아예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는 얘기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기존 협정문과 비교해 보면 대체로 ‘이익의 균형’을 깨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 공은 국회로…양국 ‘대선 정국’이 변수
양국은 서명식 이후 다음 달 3일 협정문 조문 검토 결과 및 이번 추가협상을 반영한 협정문과 부속서, 부속서한을 공개할 예정이다. 그러나 양국이 협상 과정에서 주고받은 각종 제안서 등은 협정 발효 이후 3년 뒤에나 공개된다.
협정문 발효는 양국 국회(의회)의 의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9월 임시국회에 한미 FTA 협정문에 대한 비준동의를 요청해 연내 비준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대선 정국을 앞두고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목소리를 얼마나 낼지가 변수다.
이와 관련해 경제계는 29일 한미 FTA가 타결돼 최종 협정문 서명에 이르게 된 것을 환영하고 협정 조기 발효를 위한 국회 비준동의를 촉구했다.
미 행정부는 서명식 후 국내법 개정에 착수해 하반기 중 미 의회에 FTA 이행법안을 제출하는 등의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워싱턴의 통상전문가들은 한미 FTA에 신통상정책 내용이 반영됐다고 해서 미 의회 조기 비준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내년 2월이면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연내 처리해야 하는데 의회가 쇠고기와 자동차 등을 놓고 여전히 불만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