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남 화백은 “그림은 즐기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훈구 기자
서양화 ‘꽃그림전’ 여는 수묵화의 거장 송수남 화백
남천 송수남(69) 화백은 1970년대 후반 ‘현대 수묵화 운동’의 중심에 선 이래 평생 한국화의 새 길을 모색해 왔다. 붓의 기운찬 움직임을 추상으로 담은 ‘붓의 놀림’ 연작을 비롯해 수묵 채색의 새로운 틀과 내용에 도전해 왔다. 그런 그가 아크릴로 꽃을 그린 작품을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백송화랑(02-730-5824)에서 선보인다.
전시 타이틀도 ‘남천 송수남-꽃을 그리다’로 지었다. 수묵을 신앙이라고도 했던 한국화의 거장이 서양화로 ‘전향’했다. 그 이유가 궁금해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을 찾았다.
2층 작업실에 들어서니 20∼30호 크기의 꽃그림이 100여 점 보였다. 30여 점을 전시장에 보냈는데도 꽃그림으로 가득했다.
빨강 노랑 분홍 파랑으로 치장한 꽃들이 마치 화사한 ‘봄의 합창’을 부르는 듯했다. 수묵의 매끄러움과 다른 아크릴의 거친 질감이 그 합창의 볼륨을 더 높였다.
의미 깊은 답변을 기대했으나, 송 화백은 “같은 그림(수묵화)을 평생 그리다 보니 재미도 없고 해서, 잠시 외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상이 바뀌고 의식도 바뀌는데 장르 구분에 매달리는 게 ‘촌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홍익대 미대 4학년 때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전공을 바꾸었다.
“나이가 들면서 꽃이 좋아졌어요. 그림은 철학이나 이념이 아닌 것 같아요. 무슨 ‘운동’이나 주의도 아니고…. 그저 여러 사람이 편안하게 즐기면 그뿐 아닌가요.”
꽃그림에는 매화 철쭉 진달래를 비롯해 온갖 꽃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빈틈이 거의 없어 꽃향기에 현기증이 날 것 같다.
그에게 익숙한 수묵화의 여백은 어디로 갔을까? 그는 “이 그림을 보고 ‘늙어서 화장하냐’는 말도 듣지만 내가 원래 천방지축”이라며 웃었다. 송 화백의 하루는 단순하다. 일주일에 한 차례 강의(홍익대 명예교수) 외에 거의 작업실에 머문다.
골프도 치지 않고 사람이 북적대는 곳을 꺼리기 때문에 작업실이 가장 편안하다는 것이다. 옆 작업실에도 가 보니 대형 수묵화와 꽃그림들로 빼곡했다.
“손이 움직이는 한, 붓을 잡아야지요.”
최근 한국화는 미술시장에서 침체 일로에 있다. 그는 “우리 것, 특히 수묵의 위대한 정신을 찾아야 하는데, 어린 학생들의 생각이 다르다. 1970, 80년대 나는 다행히 환쟁이로서 혜택을 받았지만 요즘 환경에서 강요할 수도 없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화가로선 드물게 ‘수묵화’ ‘여백의 묵향’ ‘고향에 두고 온 자연’(산문집) 등 10여 권의 저서를 냈다. 그만큼 자기 붓질에 대한 이론을 문헌으로 정립해 왔고 글쓰기도 즐겼다.
“그림을 안 그렸다면 글을 썼을 겁니다. 뭔가 끼적대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으니….”
허엽 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