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국회에 발의된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안’은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금연구역을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렇게 되면 지자체가 버스정류장이나 공원, 학교정화구역 등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공장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담배꽁초를 거리에 버리는 행위도 지자체가 규제한다. 흡연 규제의 범위와 정도를 어디까지로 정해야 할까. 개정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들어본다.》
[찬] 간접흡연 피해 없애려면 규제 불가피
‘담배연기 없는 깨끗한 환경’은 5월 31일 전 세계적으로 지킨 세계 금연의 날 주제다. 다른 사람이 피운 담배연기도 독성 발암물질이므로 비흡연자, 특히 어린이와 임신부를 간접흡연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다.
공동주택단지에서 어린이가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었다. 바닥에는 모래를 깔고 미끄럼틀, 시소 등 놀이시설과 꽃, 나무벤치를 설치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는 아이들을 비롯해 많은 동네 어린이가 모여 놀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네 청년들이 벤치를 차지하고 담배를 피워댔다. 어머니들이 아기를 위해 담배를 피우지 말아 달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구청에 이야기해서 어린이놀이터를 금연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했다. 단속할 근거가 되는 모법이 없어 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청계천도 마찬가지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어른과 함께 어린이가 찾아와서 시 조례를 만들어 금연지역으로 지정하려고 했으나 모법이 없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서울시뿐만 아니다. 부산에서는 누리마루가 있는 동백섬과 해운대 백사장을, 제주에서는 일부 관광지역을, 천안은 식당을 금연지역으로 만들려다 중단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제정하려고 해도 모법이 없으면 곤란하다. 금연지역을 규정하는 모법은 국민건강증진법이고 여기에 금연지역으로 해야 하는 곳을 정했는데 거기에는 청계천, 섬, 해변이 포함되지 않았다.
중앙정부가 관장하는 법으로는 청계천과 동백섬을 따로따로 금연지역으로 규정할 수 없다. 두 곳을 금연지역으로 만들면 같은 방식으로 국내 모든 개천, 모든 섬, 모든 해변을 금연지역으로 해야 한다.
하천 공원 놀이터 해변을 금연지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건강증진법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법 개정이 담배산업에 피해를 주지 않는지를 검토하는 국무총리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담배산업과 담배 도소매상의 극렬한 반대를 극복해야 한다. 또 더 큰 정치적인 일을 위해 애쓰는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된다고 해도 시간이 한없이 걸린다. 지역의 특성에 따른 금연지역의 추가 지정은 결국 불가능하다.
미국은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이 막강해 담뱃값의 인상에서 금연지역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주민의 요청에 따라 조례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필요한 경우 주민투표로 결정한다. 캘리포니아 주의 버몬트 시는 시 전체를 금연지역으로 하는 안을 지금 시의회에서 논의하고 있다. ‘건강은 지역사회의 책임이다(Health is a Community Affairs)’라는 것이 지역사회의학의 기본 철학이다. 건강은 이제 주민의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가치 중 하나다.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주민의 건강 욕구를 충족시키는 책임을 맡아야 한다. 지방의 특성과 우선순위에 맞추어 지방자치단체가 건강보호 문제를 책임지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기 바란다.
김일순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
[반] 흡연자 갈 곳 없는데 새 법까지 동원하나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규제를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다만 사회적 동물이라서 다른 이와 어울려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러 제한을 만듭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곧 자기에 대한 보호막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 배려가 도덕률이라면 최소한의 규범은 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루소는 힘을 가진 자가 자기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법을 만들었다고 꼬집습니다.
사실 법이란 적으면 적을수록 좋습니다. 굳이 법이라고 딱 정해 놓지 않아도 사람이 스스로 남을 배려하고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문명화된 사회일수록 자율이 꽃피지요.
버스정류장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한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도 담배를 못 피우게 하겠답니다. 옛날엔 버스를 타면 아저씨들이 담배를 피워댔지요. 영화관에서도 담배연기가 자욱했습니다.
요사이는 버스나 영화관은 말할 것도 없고 커피점이나 식당에서도 흡연석을 찾아야 합니다. 화장실에서도 당연히 금연이지요. 공공건물 같은 데선 법이 정해 놓은 취지와는 달리 비상계단이나 건물 밖으로 나가서 피워야 합니다.
담배에 엄청난 세금과 건강증진기금을 붙여 그 돈으로 보도블록을 놓고 건강보험 재정을 메우면서 담배를 마치 벌레 보듯이 하는군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국내 성인의 절반 가까이 됩니다. 그 사람들 건강을 위해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것이 아니고 안 피우는 사람 건강이나 기분을 위해 규제가 점점 심해집니다.
그렇다고 담배 피우는 사람만 따로 도시를 만들어 살 수 없습니다. 담배를 만들어 판 곳도 나라이고 한때는 국가 예산의 3분의 1을 담배에서 충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제 와서 담배는 마약이다, 담배는 만병의 원인이라는 식의 단순무식한 캠페인으로 몰아치니 담배에 인이 박인 국민은 그저 죽을 맛입니다.
좀 가진 사람은 낫지요. 담배 대신에 스트레스를 풀어줄 놀이나 운동도 있습니다. 레저스포츠라 하더군요. 담배를 쉽게 끊지 못하는 이들 대부분이 저소득층이거나 정신노동자입니다. 그들은 오늘도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비상계단이나 후미진 구석에서 비바람 맞으며 원망스러운 담배를 피웁니다.
그런데 또 법으로 규제하겠답니다. 언뜻 생각하니 담배 피우는 곳을 몽땅 없애 버리면 안 피우는 사람들이 피해를 볼 일이 없을 것 같군요. 법을 제안한 이도 그래봤자 담배 피우는 이가 줄지 않음을 잘 알 겁니다.
문제는 남에 대한 배려입니다. 버스나 영화관에서 담배 피우는 비문명인이 없듯이 여러 사람이 밀집한 곳에서 담배 피우는 이가 점점 자발적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그걸 당기기 위해 법으로 하겠다는 건 정말 비인간적 발상입니다. 세상의 모든 해악 중에 제일 만만한 게 담배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전원책 변호사 대한변협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