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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이야기]衆醉獨醒

입력 | 2007-07-04 02:56:00


세상이 흐르는 모습 그대로, 세상이 요구하는 상태 그대로 살아가는 것도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세상이다. 세상이 어떻게 흐르는가에 상관없이 내가 생각했던 삶을 살고, 세상이 어떠한 상태를 요구하는가에 상관없이 내가 그리던 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는 내 삶의 주인을 타인으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세상이 이리 갈 것을 요구하면 거기로 가고, 그것이 바뀌면 다시 다른 데로 간다. 나의 생각은 간 곳이 없고, 내 삶의 가운데에 타인이 들어와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얼굴을 남의 얼굴로 바꾸기도 한다. 남의 얼굴이 내 얼굴의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남기는 것은 결국 허무일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衆醉獨醒(중취독성)’이라는 말이 있다. ‘衆’은 ‘무리,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에서는 ‘세상사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醉’는 ‘취하다’라는 뜻이다. 사람은 술에도 취하지만 돈에도 취하고 권력에도 취한다. ‘獨’은 ‘혼자, 홀로’라는 뜻이고, ‘醒’은 ‘깨다, 각성하다’라는 뜻이다. ‘孤獨’은 ‘외롭게 홀로’라는 뜻이고, ‘覺醒(각성)’은 ‘깨우치다’는 뜻이다. 이상의 의미를 정리하면 ‘衆醉獨醒’은 ‘세상의 많은 사람이 취할지라도 나홀로 깨어있다’는 말이 된다. 세상이 온통 富를 좇을지라도 정당하지 않은 富를 거부하는 사람이 이에 속하고, 세상이 온통 권력을 좇을지라도 정당하지 않은 권력을 거부하는 사람이 이에 속한다. 세상이 한곳으로 흐를지라도 내가 갈 곳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그곳으로 가지 않는 사람이 또한 이에 속한다. ‘衆醉獨醒’의 아름다움과 편안함과 그 가치는 그것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