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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85년 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안’ 발표

입력 | 2007-07-04 02:56:00


‘미군사령부는 남한으로 하여금 공산세력을 저지할 수 있도록 재건 5개년계획을 위한 4억5000만 달러의 예산 획득에 부심하고 있음.’

1947년 10월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에 보도된 ‘미국의 조선 재건 5개년계획의 개요’ 중 일부이다.

이 계획안은 ‘남한의 모든 경제계획에 있어서 참작해야 할 요인’으로 △한국은 농업국이고 △천연자원이 극히 부족하며 △전력은 북한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광복 이후의 한국 경제는 5개년계획과 함께 웃고 울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1960년 1월 이승만 정부는 ‘경제개발 3개년계획’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주요 내용은 농업생산력의 극대화, 고용기회의 증대, 국제수지의 개선 등이었다. 그러나 4·19혁명으로 3개년계획이 3개월 만에 빛이 바랬다.

다음 해 마련된 제2공화국의 5개년계획도 5·16군사정변으로 그저 ‘계획’으로 끝났다.

1962∼1981년 진행된 제1∼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한강의 기적’으로 요약된다. 세계가 주목하는 눈부신 경제성장이 있었다.

그러나 그림자 없는 빛이 있겠는가. 박정희 정부는 5개년계획을 ‘지도받는 자본주의 체제’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을 ‘박정희의 보이는 손’이라고 꼬집는 비판도 있었다. 시장경제를 왜곡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이다.

1982년부터 새로운 명칭의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이 추진됐다. 경제발전에 억눌린 사회발전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자각과 경제개발의 초기단계는 벗어났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다.

1985년 7월 4일 발표된 ‘제6차(1987∼1991년)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안’의 자신감은 한 발 더 나갔다. 주요 정책방향에 물가안정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 저유가, 저금리, 낮은 원화가치 등 이른바 ‘3저 호황’이 본격화될 무렵이었다. 하지만 그 호황도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극심한 노사분규가 발생하면서 시들해졌다.

이후 김영삼 정부는 첫 문민정부임을 강조하며 ‘신경제 5개년계획’을 내세웠다. 현 노무현 정부도 2004년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뼈대로 하는 ‘제1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2004∼2008년)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2월 들어설 새 정부에서는 또 어떤 5개년계획이 등장할까. 그것이 국민에게 안길 것은 웃음일까, 눈물일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