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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62년 알제리, 프랑스로부터 독립

입력 | 2007-07-05 02:59:00


1962년 7월 5일 알제리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무려 132년이나 지속된 긴 식민통치였다.

프랑스 군대는 1830년 한반도의 10배가 넘는 이 넓은 땅에 쳐들어왔다. 침략의 구실은 ‘해적 소탕’.

원래 북아프리카는 유럽과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있어 중개무역이 발달했지만 당시 서아프리카 지역에 새로운 무역기지가 개발되면서 이곳은 큰 타격을 받았다.

굶주린 해적들은 서구 열강의 선박들을 공격했고, 프랑스는 ‘지중해의 무역 안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알제리의 수도를 점령했다. 이후 알제리와 프랑스는 점점 같은 나라로 인식돼 갔다.

프랑스인에게 이곳은 식민지가 아니라 ‘프랑스의 또 다른 영토’였다. 알제리로 이주한 프랑스인 후손들은 북아프리카를 자신의 고향으로 여겼다.

알제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는 아랍어 사용이 금지됐고 행정, 의료제도도 차차 프랑스식으로 정비돼 갔다. 또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프랑스 국기를 가슴에 달고 독일군과 싸웠다.

그러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근대 독립 국가들이 하나 둘씩 탄생하면서 이 지역에도 민족주의 바람이 불었다.

폭탄테러와 게릴라 전술로 무장한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은 1954년 독립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을 더 끌어 봐야 이득이 없다고 판단한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은 8년 뒤 철군 명령을 내렸다. 이슬람 저항세력이 서방 군대에 맞서 이긴 몇 안 되는 사례였다.

알제리전쟁은 양국 모두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알제리는 줄잡아 150만 명의 국민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또 독립을 주도한 무장세력은 ‘하키스’(독립전쟁 때 프랑스 편을 들었던 알제리인들)에게 ‘민중의 이름으로’ 피의 보복을 가했다. 이때 무참하게 동족에게 죽임을 당한 하키스는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에도 알제리와의 인연은 자국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기억으로 남았다.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1990년대 들어서는 식민 통치 시절 점령군이 알제리인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처형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프랑스는 알제리전쟁을 ‘치안 유지 활동’ ‘폭도 진압’ 등으로 평가절하하다가 1999년에야 이를 ‘전쟁’으로 공식 인정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