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기독교의 산실인 여선교사 합숙소, 인천 최초의 근대학교, 인천 3·1운동이 시작된 창영초등학교, 한국철도의 시발지….’
인천 동구 금창동 배다리 일대에 있는 문화유적지들이다.
인천시가 배다리를 관통하는 도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어 이들 유적지를 지키기 위한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 문화예술인들의 궐기
젊은 작가들의 아지트로 불리는 ‘스페이스 빔’이 전시실을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서 동구 금창동 옛 인천양조장 건물로 옮겼다.
경인전철 도원역과 동인천역 사이에 있는 이곳은 1920년에 문을 열고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소성주를 제조했던 양조장.
스페이스 빔은 이곳을 전시실로 개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8월 1∼31일 배다리 역사 문화를 주제로 한 기획전을 열 예정이다.
동구 송현동∼중구 신흥동 2.5km 구간의 간선도로 공사가 진행되자 문화인들이 4월부터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문화운동단체인 ‘퍼포먼스 반 지하’가 5월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이란 이름으로 배다리 우각로에 자리 잡았다.
‘1인 잡지’를 펴내고 있는 젊은 작가 최종규(33) 씨는 지난달 서울에서 배다리로 이사 와 ‘함께 살기’란 도서관을 열었다.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과 ‘중구 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 주민 대책위원회’ 등의 시민단체가 구성됐다.
이들 단체와 상인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배다리 역사를 더듬는 답사 프로그램과 ‘헌책방 전시회’ ‘배다리 영화제’ ‘배다리 거리 축제’ ‘책방 거리의 날’ 등의 문화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 배다리의 명물들
배다리와 우각로 일대에는 근대 역사의 채취가 살아 있는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도원고개인 우각현(쇠뿔고개)은 인천항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인천 최초의 근대길이었다. 1897년 3월 27일 이곳에서 경인철도 기공식이 열려 ‘한국철도 최초 기공지’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창영초등학교도 유서 깊은 곳. 1907년 인천 최초의 공립보통학교로 시작된 이 학교는 인천 3·1운동의 시발지였다. 이 학교 출신의 김명진, 이만용, 박철준, 손창신 씨가 학교 전화선을 끊고 동맹휴교를 선언했다는 것.
1892년 국내 최초의 사립학교로 설립된 영화학교와 1905년 고풍스러운 르네상스 양식 건물로 지어진 여선교사 기숙사(현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도 이곳의 명물로 꼽힌다.
6·25전쟁 이후 폐허가 된 배다리에 리어카 책방이 모이면서 형성된 헌책방 거리는 ‘작은 청계천’으로 불렸던 곳이다. 한때 30여 곳에 달하던 헌책방이 대형 서점에 밀리면서 10개도 채 남아 있지 않다.
인천시는 문화인과 주민 반발이 거세지자 도로 폭을 대폭 줄여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도로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는 요구가 계속돼 마찰을 빚고 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