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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X파일]집중호우 피해현장…산사태 연구원들이 간다

입력 | 2007-07-06 03:00:00


“더운 날씨에 고생 많으신데 이거라도 한 병 드세요.”

지난해 7월 제헌절 연휴 때의 일이다. 강원 평창군 진부면 거문리 마을 이장님은 폐허가 된 자신의 집을 찾은 연구원에게 일일이 음료수를 따주며 반갑게 맞았다. 연휴 기간 내내 이 일대에 내린 집중호우가 부른 대규모 산사태는 한 작은 산골을 삽시간에 삼켜 버렸다. 마을 곳곳은 그야말로 폭격을 맞은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낮은 지대에 있던 집들은 대부분 산에서 쓸려 내려온 흙과 돌에 처참히 부서지거나 묻혀 버렸다. 몸만 간신히 빠져나온 한 아주머니는 외양간에 두고 온 소 걱정에 발만 동동 굴렀다. 팔순의 할머니는 작은 가재도구 하나라도 챙기기 위해 흙탕물에 그릇을 씻고 있었다.

자기 집이 쓸려나간 상황에서도 마을 이장은 오히려 우리 연구팀을 걱정했다. 자신의 집은 제쳐두고, 트랙터를 끌고 나와 다리가 끊긴 강을 몇 번이고 건네 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산사태 연구는 산비탈에서 일어나는 산사태의 원인을 밝히고, 훗날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위치를 가늠하여 피해 규모를 예측하고 방지하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 연구팀의 가장 좋은 연구실은 자연히 산과 들일 수밖에 없다. 가급적 우리는 생생한 자료를 얻기 위해 산사태가 일어난 지 24시간 안에 현장에 도착하려고 노력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산사태 원인을 조사하는 동안 우리는 최근 몇 년간 보지 못한 심각한 피해 규모에 놀랐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부서져 어디서부터 복구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산사태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한참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을 무렵, 옆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거기서 왔다 갔다만 하지 말고 이 흙 좀 빨리 치워요.” 이에 한 주민이 “이분들은 일하러 온 분들이 아니고, 산사태 연구하는 박사님들이래요”라며 응수했다.

“에이! 무슨 박사들 차림이 저래요? 박사 맞아요?” 온통 흙투성이 바지와 신발,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은 누가 봐도 과학자의 모습이 아니다. 영화에서나 볼 듯한 몰골이다. 하지만 그 말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엄청난 재앙 앞에 담담히 일어서는 산골 주민들의 모습에 숙연해질 뿐이었다.

피해 지역 주민의 물심양면 지원 덕분에 얼마 전 우리는 산사태를 예상하고 피해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좀 더 완벽한 예측모델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산과 들을 찾는다. 그래도 걱정은 계속된다. 올여름은 또 어떨까? 호우나 산사태 같은 자연재해가 없어야 할 텐데.

채병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산사태재해 연구팀장

bgchae@kiga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