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장애를 이겨 내고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오른 산악인 김홍빈 씨. 그는 손가락이 없어 신발끈을 묶거나 등산복 지퍼를 잠그는 것조차 어렵지만, 정상에 올라 많은 장애우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광주=박영철 기자
“열 손가락 잃은 곳, 그러나 生을 얻은 곳… 산!”
“저는 열 손가락이 없는 장애인입니다. 하지만 산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도 저를 받아 줬잖아요. 허허….”
5월 16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50m)에 오른 2급 장애인 김홍빈(43·에코로바 홍보이사) 씨.
장애인으로서 세계 네 번째,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주인공이다.
1일 만난 그는 등정 후 한 달 보름이 지났지만 피로가 덜 풀린 듯 조금 지친 모습이었다.
눈 밑 피부는 여전히 검게 타 있었고 고산증으로 고생한 탓에 간간이 기침을 했다.
“축하 자리가 많다 보니 아직껏 제대로 쉬지 못했어요. 몸 상태가 좋지 않지만 여기저기서 불러 주니 그래도 지금이 행복한 것 같아요.”
에베레스트 원정길은 그에게 큰 부담이었다.
1989년과 2000년 두 차례 도전했다가 실패한 전력이 있었다. 이번에 오르지 못하면 사실상 에베레스트는 포기해야 할 형편이었다. 한 번 원정하는 데 비용만 5000여만 원. 실패한다면 더는 스폰서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막다른 길목이었다.
하지만 갖은 어려움 끝에 그는 ‘2007 한국도로공사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참가해 4월 28일 네팔 카트만두로 떠났다.
등정 과정은 눈보라, 추위와의 모진 싸움이었다. 그는 윤중현(37), 김미곤(36) 대원과 함께 5월 15일 밤 8시 캠프4(8500m)를 출발했다.
에베레스트 17개 루트 가운데 네팔 쪽 남동벽을 공격 루트로 골랐다. 빙벽이 60∼70도로 가파르고 순간 초속 20∼30m의 강풍까지 불어 100m를 이동하는 데 3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숨이 턱에까지 차는 극한 상황 속에서 10시간이 넘는 도전 끝에 그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정상에 발을 디뎠다.
손가락이 없어 장갑을 끼고 벗는 것, 소변을 보고 지퍼를 올리는 것까지 동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힘든 그였다. 해발 8000m 이상의 고소에서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데 신세지는 것이 미안해 지퍼를 올리지 않고 추위에 떨 때도 있었다.
그는 “함께 등반한 후배들이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도와줬다”며 “장애인 형의 열 손가락이 되어 준 동생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의 산악 인생에서 이번 등정의 의미는 각별하다.
김 씨는 1997년부터 장애인으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에 도전하고 있다.
이미 1997년 유럽 엘부르즈(5642m)와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1998년 남미 아콩카과(6959m)와 북미 매킨리(6194m)에 오른 그에게 에베레스트는 꼭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의 초등학교 때 꿈은 배구선수였다.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어 선수의 꿈은 접었지만 만능 스포츠맨이던 그는 중고등학생 시절 모든 운동부의 ‘스카우트 1순위’였다.
하지만 그가 가장 매력을 느낀 스포츠는 산악 등반이었다.
하지만 1991년 매킨리 단독 등반은 그의 인생을 크게 뒤흔들었다.
시샤팡마·초오유 원정을 앞두고 경험을 쌓기 위해 이 산을 오르던 그는 자신감에 넘쳐 단팥죽 외에 식량을 거의 가져가지 않았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무리하게 단독 등반을 계속하다가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행히 다른 산악인들이 그를 발견해 목숨은 건졌지만 손에 심한 동상이 걸렸다.
“캐나다의 한 병원에서 열흘 만에 깨어났을 때 정말 어이가 없었어요. 열 손가락이 모두 없어진 거예요. 3개월간 혼자 병원에 있으면서 자살할 생각까지 했지만 한국에 계신 어머니 때문에 차마 그럴 수 없더군요.”
귀국 후 그에게 찾아온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다. 혼자 힘으로는 먹을 수도, 옷을 입을 수도 없었다.
1997년 마땅한 직업을 마련하지 못해 낙심하며 지내던 어느 가을날 그는 홀로 광주 무등산에 올랐다. 한 등산객이 그를 가리키며 같이 등산하던 어린 아들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도 저렇게 열심히 살아가지 않느냐”라고 격려하는 말이 귓가에 스쳤다.
자칫 언짢게 들릴 수 있는 이 얘기가 그에게는 ‘빛’으로 다가왔다. ‘나처럼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각오를 몸으로 보여 주기 위해 7대륙 최고봉 등정계획을 세웠다.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으로 이제 남은 고지는 호주 대륙의 코지어스코(2228m)와 남극의 빈슨매시프(4897m) 두 곳뿐이다.
그는 올해 안에 두 대륙의 최고봉에 모두 오른 뒤 전 세계 8000m 이상 14개 봉우리에 오르는 새로운 도전에 나설 계획이다. 산에서 손가락을 잃었던 그가 계속 산에 오르는 이유는 뭘까.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산을 오르면서 자꾸 느끼는 것인데…. 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장애인이라고 편견을 갖고 대하지도 않고 차별도 하지 않죠. 그래서 산이 좋은 것 같아요.”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김홍빈:
△1964년 전남 고흥군 동강면 출생 △1985년 광주 송원전문대 졸업 △1991년 북미 매킨리 등반 중 동상에 걸려 열 손가락 절단 △1997년 유럽 엘부르즈,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정 △1998년 남미 아콩카과, 매킨리 등정 △2001년 한국대학산악연맹 올해의 산악인 상 수상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대회 출전 △2006년 가셔브롬Ⅱ, 시샤팡마 등정 △2007년 에베레스트 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