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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정재승]이 땅의 과학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입력 | 2007-07-10 03:00:00


프랑스의 마케팅 구루인 클로테르 라파유의 ‘컬처 코드’에 따르면 미국인에게 직업은 정체성이다. 생계유지 이상으로 매 순간 내 삶을 규정하는 것이 바로 직업이라는 얘기다.

반면 프랑스인에겐 직업에서 열정이나 몰두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직업에 대한 욕구가 쾌락 추구에 대한 욕구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재미가 없으면 차라리 실직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직업은 오직 ‘국가나 신에게 봉사할 때만 가치가 있다’는 것이 라파유의 지적이다.

일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돈에 부여하는 가치가 나라마다 다르다. 독일에선 돈을 ‘기회의 수단’으로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열심히 돈을 벌겠다는 얘기다. 독일의 머니트레이너 보도 샤퍼는 돈이 곧 ‘자유’라고 설파한다.

미국에선 돈이 ‘성공의 척도’다. 왕족이나 귀족이 없는 미국에선 돈만이 그들의 사회적 계급을 결정한다. 미국의 부호는 일종의 상위 계급으로서의 자부심과 의무감 같은 게 있다. 많은 세금을 기꺼이 내고 기부와 봉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여기서 나온다. 자식에게도 능력을 스스로 입증할 기회를 주고자 부모의 재산에 무임승차시키지 않는다.

프랑스에선 돈이 쾌락을 추구하는 수단이다. 미국에선 억만장자도 열심히 일하지만 프랑스에선 이런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 미국에선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 같은 경영서가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채우지만 프랑스에선 ‘게으름아, 안녕?’ 같은 책이 더 많이 팔린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게 직업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돈을 벌려고 하는 걸까?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포브스 표지를 장식하는 세계 100대 부자나 총재산이래야 소 몇 마리가 전부인 동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이나 삶의 만족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한국 사회에서 직업이 갖는 컬처 코드는 ‘사회적 인정’이다. 우리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시절을 등수 매기기에 열을 올리며 보냈다. 요즘 학생은 과학이 좋아서 과학고에 가는 게 아니고, 외국어에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외고 입시를 준비하는 게 아니다.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특목고에 가니까, 나의 실력을 가정과 사회에서 인정받고자 그곳에 들어가려 한다. 그들은 가장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사람들이 가장 좋은 대학이라 ‘믿는’ 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가장 우수한 학생이 준비한다는 의학대학원 준비로 분주할 것이다. 출신 대학만 들어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먼저 떠오르는 그들은 이제 직업으로 ‘사회적 인정’을 갈구한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명품 가방을 메고 강남에 살고자 안달이 날 텐데 그런 방식으로밖에 내가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드러낼 줄 모른다.

‘이공계 기피 현상’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 나왔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제일 먼저 과학기술 연구투자를 줄인 일은 ‘어렵고 힘들지만 중요한 일을 한다’는 사회적 인정으로 버텨 오던 과학기술자에게 심한 자괴감을 안겨 주었다. 그들이 만날 의사나 변호사를 들먹이며 ‘우리도 그들만큼 똑똑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왜 그만큼 대우를 안 해 주느냐’고 투정부리는 것은 월급을 올려달라는 뜻이 아니다. 그들도 ‘사회적 인정’을 갈구하는 것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평준화라는 바다에 떠 있는 특목고라는 섬, 이공계라는 숲 너머에 있는 의대라는 봉우리를 향해 질주한다. 그곳에서 ‘별이 달린 계급장’을 나눠 주기 때문이다.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바이오 및 뇌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