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백인만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사례1 : 미국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한국계 백인 혼혈인 글로리아(Gloria). 그녀는 지난 1월 취업비자를 받아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입국했다. 영어를 가르치면서 한국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녀는 영어강사 자리를 찾던 중 씻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글로리아는 인터넷을 이용해 강남의 A영어학원에 사진이 첨부되지 않은 이력서를 제출했다. 처음에는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학원은 사진을 요구했고, 이후 태도가 돌변했다. A학원 측은 결국 글로리아에게 채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
“저희 학원은 오직 백인만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인종차별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마시고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흑인들은 더 심한 경우를 당하기도 하니까요. (The company is looking for only white people. Korea is a racist country and always will be so you shouldn't take it personal, and not to feel bad because, the blacks have it worse here.)”
#사례2 :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의 흑인 데이비스(Davis)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는 지난 3월 한국에 들어와 강남 일대의 몇몇 영어학원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학원측은 언제나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구했고, 그때마다 채용에 탈락했다. 어떤 학원에선 전화 인터뷰까지 통과했으나 학원장과의 면접에서 탈락했다.
현재 수원 소재 B영어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그때 내가 채용되지 못한 것은 흑인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며 “지금의 학원도 나를 고용한 것이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라고 한다. 아마 학생들의 부모는 내가 흑인인 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흑인강사는 찾아보기 어려워
국내 영어학원의 인종차별은 외국인 영어강사들에게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경기 분당과 서울에서 영어회화 강사로 2년째 일하고 있는 더글러스(Douglas)는 “한국의 영어학원은 가급적 유색인종을 채용하려 하지 않는다. 일부 규모가 큰 학원에서 채용하기도 하지만 아주 드문 경우”라고 말했다. 원어민 강사 리쿠르팅 업체인 워크앤플레이(WorkNPlay) 관계자도 “흑인을 비롯한 유색 인종의 경우 강사직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채용 기회가 훨씬 적다. 아마 강남이나 분당 일대의 학원에서는 흑인 강사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어학원도 할말은 있다. 수강생들의 선호에 따라 백인 위주로 채용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서울 강남의 C학원 채용담당자는 “아무래도 학원의 이미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수강생들은 흔히 영어학원이라면 미국에서 온 백인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학원의 경우에는 더욱 백인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강생들이 백인이 아닌 외국인 강사들에게는 영어를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학원은 백인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이혜리(26․경기 산본) 씨는 “수강생들 사이에 흑인들은 억양이 강하고 고급스럽지 못한 영어를 쓸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학원의 수강생인 윤선정(24․서울 서대문구) 씨도 “흑인의 외모가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무서울 때가 있다”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한국계 혼혈인 “한국의 인종차별은 매우 충격적”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고려대 사회학과 윤인진 교수는 “한국 사람은 인종에 대한 서열 의식과 출신국의 사회 및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 외국인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선진국 출신의 외국인은 우대하는 반면에 개발도상국가나 후진국 출신의 외국인은 멸시한다”고 비판했다.
글로리아는 그 일을 겪은 후 국내 한 영자신문의 독자투고란에 “한국의 인종차별은 매우 충격적인 경험이었다”며 반성을 촉구하는 글을 실었다.
“하인즈 워드가 한국을 방문한 것이 바로 얼마 전 아니었습니까? 한국에 다니엘 헤니나 데니스 오와 같은 인기 있는 혼혈인 아이콘들이 있지 않습니까? 한국은 아시아의 ‘허브’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국 사회는 인종 차별주의에 대한 극복 없이는 아시아의 허브라는 지위를 얻기 힘들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이 기사는 이우섭 동아닷컴 인턴사원(jeromi9117@hotmail.com)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