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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방형남]‘남한풍(南韓風)’

입력 | 2007-07-12 03:00:00


탈북자 A 씨는 얼마 전 북녘 고향에 두고 온 딸과 통화를 하다 그곳의 변화를 절감했다. 열아홉 살인 딸이 집안 소식을 전하다 느닷없이 “대장금 CD를 보내 달라”고 하지 않는가. 딸은 CD를 복사해 팔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며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떼 주고 현금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A 씨와 친분이 있는 자유북한방송 대표 김성민 씨가 전해 준 얘기다.

▷북한에 남한의 드라마, 영화, 가요가 퍼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국 접경지역에서 생기기 시작한 노래방, 영화방, 컴퓨터방 등 ‘남조선 오락시설’이 요즘은 북한 전역에 퍼졌다고 한다. 이용하는 연령층도 폭넓다. 지난해 함경남도 덕성군에서 ‘비(非)사회주의 현상을 뿌리뽑기 위한 군중재판’이 열렸는데 인민학교(초등학교) 어린이 12명이 끌려 나왔다. 금지된 남조선 녹화물을 본 혐의였다. 어린 탓에 교사가 대신 처벌을 받았으나 ‘남한풍’이 노소 가리지 않고 북한 주민들 사이에 퍼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본보가 입수한 북의 포고령에 따르면 북한 인민보안성은 최근 국가의 승인 없이 개설한 노래방, 영화방 등을 모두 폐쇄하라고 지시하고 따르지 않는 자는 직위와 소속을 불문하고 엄벌에 처하겠다고 경고했다. 북한 당국은 3년 전에도 “남조선 영화를 보는 자, 비디오 기기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등록하지 않은 자를 엄단한다”는 포고령을 내린 바 있다. 경고가 잦다는 것은 그만큼 체제 수호에 위협을 느낀다는 뜻도 될 것이다.

▷희망사항이지만 북한 당국이 남한풍을 한류(韓流)의 관점에서 볼 수는 없을까. 아시아 전역을 휩쓰는 남한의 대중문화를 북한 주민들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민족끼리’ 구호의 실천이 아니겠는가. 김정일 국방위원장부터 남한 영화와 드라마에 심취해 있으면서 주민들은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북한 주민들도 남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즐기고 싶고, 신명을 내고 싶을 텐데 언제까지 틀어막을 수 있을 건가.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