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는 전직 경찰총수의 청탁과 현직 간부의 개입, 대기업의 금품 로비와 회유,짜맞추기 수사로 만신창이가 됐던 것으로 13일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경찰의 보복폭행 수사는 법과 원칙이 아닌 외압과 청탁ㆍ로비가 개입할 경우 수사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왜곡 수사'의 전형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전직 경찰총수의 청탁과 외압, 대기업의 로비와 회유, 경찰의 짜맞추기 수사 등이 자행되는 동안 한화와 전직 총수, 수사를 무마하려한 현직 간부들에게 법과 원칙ㆍ정의는 없었다.
◇ 법 농락한 전직 총수 = 검찰은 한화 고문인 최기문 전 경찰청장을 외압의 `핵'으로 지목했다.
최 고문은 보복폭행 사건 발생 나흘 뒤인 3월12일 한화리조트 김모 감사로부터 수사 상황을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교 후배인 장희곤 남대문서장에게 전화했다.
최 고문의 청탁을 받은 장 서장은 현장 조사를 나가있던 강대원 과장에게 철수를 명령했다. "피해자가 신고한 것도 아니고, 고소장이 접수되지도 않았고 합의가 됐으니 수사팀을 철수하라"는 지시였다.
강 과장이 "기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안인데 문제가 안되겠냐"고 우려했지만 장서장은 일축했다.
최고문은 이튿날 광역수사대의 내사 사실을 듣고 곧바로 홍영기 서울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잘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
15일에는 한기민 서울청 형사과장에게 전화해 "고소ㆍ고발이 없는데 왜 수사하냐"고 항의한 뒤 김 회장을 잘 처리해달라고 부탁했고 같은 날 저녁 홍 청장과 저녁식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3월19일 김승연 회장이 최고문에게 전화해 "내가 관련돼 있으니 잘좀 해달라"며 로비를 직접 부탁한 사실도 새로 드러났다.
◇ `김승연 봐주기' 짜맞추기 수사 = 최고문이 경찰 고위층에 대한 로비를 담당했다면 남대문서 수사팀에 대한 로비는 한화리조트 김 감사가 맡았다.
김 감사는 한화측에서 피해자 무마 및 경찰 로비 명목으로 5억8000만 원을 받아 피해자 무마 비용으로 6000만 원을 쓰고 맘보파 두목 오모 씨에게 남대문서 뇌물과 피해 무마 비용 등으로 2억7000만 원을 지급했다.
김 감사는 개인적으로 2억5000만 원을 쓰기도 했는데 그가 마련한 돈이 실제 남대문서 수사팀에게 전달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오씨가 강과장에게 "둘째 아들을 한화에 취직시켜주고, 사직하면 평생 한화에서 부장 대우를 해주겠다고 제의하자 강 과장은 이를 받아들여 수사를 마친 후 아들의 이력서를 제출하겠다고 답변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경찰이 짜맞추기 수사로 김 회장은 빼고 경호과장 진모 씨만 처벌하려했던 정황도 확인됐다.
3월28일 광수대에서 남대문서로 첩보가 넘어오자 4월17일 한화 경호과장 진씨를 먼저 불러 김 회장은 무관하다는 내용으로 조서를 작성하고 영상녹화까지 하는 등 내사 종결 수순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남대문서는 4월24일 언론에 처음 보도되자 수사가 활발히 진행 중이었던 것처럼 꾸미려고 6건의 수사 보고서를 조작해 만들기도 했다.
검찰은 "결국 남대문서 수사팀이 한화와 긴밀히 협조하면서 김 회장이 관련 없는것처럼 사실 관계를 왜곡하려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전했다.
◇골프 회동 문제 없었나 = 이택순 경찰청장 부부가 3월18일 한화증권 유시왕 고문 부자와 골프를 친 사실이 확인됐으나 검찰은 사건 청탁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 청장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유 고문이 이 청장에게 3월13일부터 5월초까지 7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2차례 통화를 했지만 모두 `골프 약속' 얘기만 했다는 점과 서울경찰청장부터 남대문 서장까지 인연이 닿는 모든 경찰 간부에게 로비를 시도한 최 고문이 유독 이 청장에게만 전화를 걸지 않았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광수대의 규정을 무시하고 수사를 남대문서로 떠넘긴 김학배 전 서울청 수사부장과 최 고문에게 수차례 로비를 받고 사실상 남대문서로 수사를 넘기도록 묵인한 홍영기 전 서울청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고 장희곤 서장 이하 수사팀 중간 간부들만 처벌됐다는 점도 과연 검찰이 냉정한 판단을 했느냐 하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디지털뉴스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