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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일상이여 안녕… ‘토끼와 함께한 그해’

입력 | 2007-07-14 03:01:00


◇ 토끼와 함께한 그해/아르토 파실린나 지음·박광자 옮김/215쪽·9500원·솔

바타넨은 우울하다. 아내가 흉한 물건을 사들이는 게 영 못마땅했는데, 심지어 몰래 낙태까지 해버렸다. 신문사 기자로 부당한 일에 맞선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온갖 불공정한 일을 보도한다면서 정작 사회의 근원적 병폐에 대해선 침묵하는” 걸 깨달았다. 갑갑한 심정으로 운전하던 차, 바타넨은 교통사고를 내버린다. 어린 토끼를 들이받은 것.

다리 다친 토끼를 내려다보던 바타넨, 느닷없이 결심한 것은 ‘심란한 일상이여 안녕’이다. 그때부터 토끼와 함께하는 바타넨의 로드 무비가 펼쳐진다. 종이와 펜만 굴리던 사내가 먹고살려니 육체노동밖엔 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 숲을 떠돌면서 집 고쳐 주고 나무해 주면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생활인데, 마음은 그렇게 편할 수 없다. 몸 쓰는 일을 하니 몸도 튼튼해진다. 가끔 사람 많은 도시로 나와 보지만 느끼는 건 환멸뿐. 마을 의사는 하룻밤 신세지겠다는 바타넨을 경찰에 신고해 버리고, 망나니 젊은이들은 사우나를 하겠다고 바타넨의 땔감을 빼앗고는 개까지 풀어 놓는다. 독자야 황당 코믹한 인물들의 잇단 등장에 웃음이 터지지만, 겪는 바타넨은 정 떨어질 법하다.

핀란드 남쪽 헤이놀라에서 출발한 바타넨의 여정은 1년여 뒤 북쪽 국경선까지 이른다. 소설 막바지에 이르면 바타넨은 거의 숲 속의 한 동물이 된 듯하다. 집에 쳐들어와 자신을 물어버린 곰에게 복수하겠다며 쫓아 나서는 장면은 분명 어이없는 설정인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후련하다.

문장이 다소 딱딱해 처음에 몰입하기 쉽지 않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작가 특유의 블랙 유머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바타넨처럼 일상의 지루함에 절어 있을 독자들, 바타넨의 일탈을 통해 잠시나마 통쾌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